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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코메니우스연구소·기독교학술원, 제3회 목회자 콘퍼런스 (9)코메니우스 교육신학사상의 역사적 배경⑨
  • 정일웅 박사
  • 승인 2018.12.29 16:16
  • 호수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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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와 코메니우스 생애와 관련하여

마티아스도 마찬가지로 병약하여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1617년 황제 페르디난트 2세(FerdinanntII.:1578-1637)에게 넘겨주었고, 그는 황제 겸 왕으로 선출된다. 그리고 페르디난트 2세는 먼저 보헤미아의 왕이 되자, 반종교개혁의 편에 서서, 선임자인 루돌프 2세가 내렸던 종교자유의 칙령을 무효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반종교개혁의 정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일에 보헤미아의 개신교도들이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보헤미아의 귀족신분(직능대표)자들은 황제의 종교자유무효화에 대한 칙령선포를 거절하고, 페르디난트를 왕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게 된다. 이때 보헤미아는 임시정부가 세워지게 되었고, 새로운 왕을 선출해야만 하였다. 프로테스탄트 대표들은 독일팔츠지역의 성주인 프리드리히 5세를 보헤미아의 영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프리드리히 5세는 보헤미아에서 성장한 분이 아니어서, 보헤미아의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프리드리히는 영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황제를 선출하는 과정에 이미 폐위된 페르디난트가 황제후보로 등장한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채, 그에게 찬성표를 던지게 된다.14) 그리고 황제가 된 페르디난트는 정치적으로 잘못된 조언을 수용하여 보헤미아의 왕으로도 선출되었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개신교편에 있던 영주들은 혼란에 빠져 들어갔으며, 이미 프라하에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동맹체를 형성하고 있던 가톨릭의 영주들은 프리드리히가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프라하 동편 백산(눈이 쌓여있는 산)으로 피신하였을 때, 그곳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전투를 벌리게 된다. 그 전투에서 마침내 프리드리히 군대가 패하고만다. 그 전투에서 패한 프로테스탄트의 27명의 귀족들과 시민대표들은 모두 1621년 6월 21일 프라하 광장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1555년에 체결된 아욱스부르그 평화조약의 원칙인‘지역 통치자의 종교가 그 통치영역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cuius regio, eius religio)법이 페르디난트의 통치영역인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지역에 선포되었던 것이다.15) 그리고 이와 같이 보헤미아(체코)가 합스부르그가(家)의 통치하에서 지속적인 반종교개혁이 주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더 이상 보헤미아와 보라비아 전역에 존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에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

연합교회의 형제들은 고향을 떠나 폴란드에 있는 도시‘리사(Lissa/Leszno)로 피난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젊은 코메니우스가 함께 동행 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1592-1670)의 생애와 사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해 가톨릭으로부터 종교박해를 받고, 마침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떠돌며 외롭게 살아야 했던 많은 보헤미아-모라비아 형제연합교회의 형제들 가운데 코메니우스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비록 망명생활로 일생을 타국에서 보냈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조국에서의 삶을 애타게 그리며, 귀환을 기다렸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히려 전 세계를 위하여 수행했던 그의 수많은 일들로 인하여 그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중에 한사람이기도 하였다. 필자는 그의 생애와 그 당시 활동의 역사를 소개하고,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을 통하여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 미치고 있는 그의 신학적이며 교육적인 영향들을 밝혀보기로 한다.

1) 코메니우스의 출생과 성장과정

코메니우스는 1592년 3월 28일 우헤르스키 브로드(Uhersky’Brod)근처 동모리비아의 한 마을인 니브니체(Nivnice’)에서 아버지 마르틴 코멘스키와 어머니 안나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의 이름은 체코어로 코멘스키(Komensky)이며, 후에 청년기에 라틴어로 바꾸어 아모스 코메니우스(AmosComenius)로 명명하게 된다.

(다음호에 계속)

정일웅 박사  www.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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