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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 / 코메니우스연구소·기독교학술원, 제3회 목회자 콘퍼런스 (8)코메니우스 교육신학사상의 역사적 배경⑧
  • 정일웅 박사
  • 승인 2018.12.29 16:10
  • 호수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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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와 코메니우스 생애와 관련하여

4. 보헤미아(체코)의 프로테스탄트와 반종교개혁세력과의 투쟁관계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엽에 보헤미아(체코)지역에 3개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첫째는 후스파의 양 영성체교회(Utraquisten)이며, 둘째는 보헤미아 형제연합교회였으며, 셋째가 루터파 교회였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세 그룹은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세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동맹체를 결성하게 된다. 그들은 1575년에 보헤미아 국가회의에서 새로운 체코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승인을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그 때문에 보헤미아 신앙고백서(Confessio bohemica)가 새로운 프로테스탄트의 공동고백서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욱스부르그 신앙고백서를 토대로 만들게 되었는데, 물론 그 안에는 후스파가 1419-20년에 만들었던‘프라하 신앙4개 조항’을 비롯하여 제2 헬베틱신조와 하이델베르그 신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앙고백서는 1575년 5월 마침내 황제 막시밀리안 2세(KaiserMaximilian II.:1527-1576)에게 제출되었고, 그해 9월에 황제는 형제연합교회를 비롯하여 보헤미아 전체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앙의 자유를 구두로 승인하며 보증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합스부르그가(家)의 가톨릭 사람들은 물론 그 법을 그들의 방식대로 해석하였고, 그들은 어쨌든 종교자유에 대한 이해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된병약한 루돌프 2세 하에서 개신교편에서 있었던 귀족 신분(직능대표)을 가진 대표들이 자기방어로 취해진 행동들에서 실책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모라비

아 출신의 귀족대표자들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귀족들과 함께 그들에게 구두로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던 루돌프의 형인 마티아스(Mathias)에게 충성을 맹서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에 비하여 보헤미아의 귀족들은 루돌프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루돌프가 약속한 종교자유의 실현을 지체하고 있을 때, 그들은 무장봉기의 위협으로 황제에게 서명을 강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1609년 7월 9일에 루돌프황제의 칙령이 서명하기에 이르게 되

었던 것이다.

마침내 막시밀리안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루돌프 2세(Rudolf II:1576-1612)는 1609년 6월 9일 프로테스탄트들의 압력에 의하여‘황제칙령’이란 문서를 발표하게 된다. 그것은 체코 전역에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의 자유를 법으로 보장하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직능대표의 사회적 신분을 가진 프로테스탄트의 귀족들에게 장로회(Consistorium)와 대학을 운영하는 권한도 넘겨주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는 왕적인 평화수단에 의존되었는데, 황제는‘그의 통치와 그의 종교’(cuiusregio, eius religio)라는 1555년의 아욱스부르그 종교화의 원칙을 실제로는 가톨릭 편에 있는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적용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약 1/10에 해당하는 가톨릭교회의 소수에게도 종교자유는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가톨릭의 영주들은 이러한 황제의 서명을 사실은 거절하고 있었으며, 역시 그 사이에 가톨릭주의자들은 프로테스탄트를 공격할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시밀리안(Maximillan)과 루돌프 2세(Rudolf II)의 통치기간인 1575-1620년까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지역은 형제연합교회에 속한 신도 수가 크게 확장되었는데, 국민의 약 90%가 프로테스탄트에 속하게 되었다. 1579-1594년에는 체코어로 번역된 6권의 ‘크라리체 성경’(Kralicer Bibel)이 출판되었고, 어쨌든 체코의 프로테스탄트에게는 보헤미아 문학의 황금기로까지 불려질 정도로 번창한 기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였다. 1611년 황제 루돌프 2세는 병으로 인하여 통치력을 그의 형제 마티아스에게 넘기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정일웅 박사  www.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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