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2.5.17 화 17:00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12>나환자들의 아버지 오방(五放) 최흥종 목사 (1880-1966)
  • 서광호 기자
  • 승인 2018.12.29 15:30
  • 호수 429
  • 댓글 0

광주 출신으로 최초교인, 최초장로, 최초목사인 최흥종은, 구한말 광주 화순에서 싸움꾼으로 유명했는데 그가 1904년 광주 양림동의 유진벨(E. Bell) 선교사 집에 드나들다가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희생봉사에 감동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여 광주의 첫 번째 교인이 되었다.

한편 1909년 4월, 광주의 오웬(C.C.Owen) 선교사가 폐렴으로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은 목포의 포사이드(W.H.Forsythe) 선교사는 황급하게 목포에서 배를 타고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로 올라왔다. 이때 광주에서 최흥종이 영산포까지 마중을 나갔다. 포사이드는 최흥종과 함께 광주로 향하던 중에 길가에 누워서 죽어가는 한센병(문둥병)환자를 만났다. 포사이드는 사랑하는 친구 오웬 선교사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황급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죽어가는 나환자를 못 본체하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는 환자를말에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광주까지갔다. 그리고 환자를 광주선교부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다른 환자들의 반발로 하는 수 없이 근처 벽돌 굽던 가마터로 옮겨갔다. 이때 악취가 진동하고 손발에서 고름이 나오는 여인을 두 손으로 안고 옮기다가 여인이 지팡이를 놓치자 포사이드는 옆에 있던 최흥종에게 지팡이를 집어주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며 끝내 지팡이에 손을 대지 못했다. 이 일로 최흥종은“서양 선교사는 문둥병자를 끌어안기도 하는데 나는 왜 지팡이도 잡지 못했는가?”고뇌하다가 그러한 힘은 오직‘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진짜교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조선나환자근절협회 창설자

그 후 “양림동 선교사가 문둥병자를 치료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선교사들은 급히 집을 마련해 환자를 수용했고 1912년에는 요양원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 한센병 전문 병원인‘광주 나 병원’의 시초이다. 같은 해 최흥종은 광주 양림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다. 그는 민족운동에도 열심으로 1919년엔 서울로 가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광주기독교청년회(YMCA)를 창설하였으며, 192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광주 북문밖교회 초대 담임목사가 되었다.

한편 광주주민들의 항의로 나병원은 여수반도로 옮겨가 오늘의‘여수애양원’이 되었고 1932년 최흥종은 윤치호, 김병로, 이인, 송진우, 조만식 등과 함께 ‘조선나환자근절협회’를 창설하였다. 그리고 거리에서 유리걸식하다가 죽어가는 나환자들의 치료와 생계문제를 위한 대책을 세워달라고 조선총독부에 지원을 요청하였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전국에서 모인 500여명의 나환자들과 함께 총독부 안마당까지 쳐들어가 마침내 소록도 갱생원을 대폭 확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의 나이 55세 때 묵상 중에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체험한 후, <사망통지서>를 주위 사람들에게 발송하기도 했으며, 한국나예방협회, 삼애학원, 호혜원 등을 설립하여 걸인과 병자들을 위한 구제 사업에 앞장섰다. 그는“이제 살만큼 살았다”며 1966년 2월 10일부터 단식에 들어가 95일 만에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최흥종은 낮은 곳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면서 거룩한 삶을 살다간 한국교회사에서 빼놓을 수없는 인물이었다.

서광호 기자  seojacop@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서광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