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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8>군사정권 당시 세례요한처럼 외쳤던 고영근 목사(평북 의주1933~ 2009)
  • 김헌곤 목사
  • 승인 2018.11.08 15:10
  • 호수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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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곤 목사,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관장, 본지 객원 논설위원

 

25회 투옥·48회 재판, 고난의 삶

한국전쟁 시 포로 수용소 교회를 시작으로 군인교회 목회 2년 6개월 등 특수목회 경험에 이어 58년도부터는 대전 백운성결교회,북아현성결교회,성북성결교회를 시무했으며, 이후 통합측에서 문서선교를 하다 1980년 한국목민선교회를 창립하고 특별히 그는 군사정권 하에서 집권자의 불의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다가 48회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25회 차례의 투옥을 당했고, 시국기도회를 여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02 년에는 생활개혁운동본부를 창립해 십계명을 기초로 국민윤리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는 사역을 펼치다 2009년 소천했다. 광주에서 열린 1982. 5. 18 광주 2주기 추모예배 설교 내용이 문제가 되어 안기부에서 심문을 받았다. 그 유명한 설교는 '순국열사의 핏소리, 아벨의 핏소리'였다. 그 내용은 "아벨의 핏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처럼 광주 시민들의 고귀한 핏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리라, 하나님의 진노의 지팡이가 오기 전에 군사반란자 전두환, 살인자 전두환 정권은 회개하고 물러가시오! 광주에서 산화한 애국선열들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오히려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루속히 자유, 정의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성취하라고 핏소 리는 지금 계속하여 부르짖고 있습니다. 결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심의 소리를 묵살하지 말며 기만에 속아 살며 폭력 앞에 굴복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외쳤다.

1982년 5월 18일 광주추모예배 설교를 맡았을 때 고목사가 증언하기를, “엄청난 협박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안 기부 수사국, 안기부 정보국, 보안사령부, 검찰청 공안부, 치안본부 정보과, 시경, 동대문서, 강서경찰서 정보과에서 빗발치는 협박전화가 걸려왔다.

"고영근! 광주에 가서 무슨 설교를 하려는 것이야! 이 새끼! 설교 맡은 것 취소해! 취약지구 광주에서 반정부 발언을 하면 가차 없이 구속이야! 말조심 해 이 새끼!”

부인 한완수 권사

나는 큰 고민에 봉착하였다. 그런데 내 아내가 나의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여보, 당신이 예언자로서 전두환 정권에게 회개를 촉구할 좋은 기회인데 무엇을 망설이나요? 엘리야같이 담대하게 회개를 외치세요. 가정염려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내가 최선을 다해 가정을 이끌어 갈 터이니 안심하고 당신은 예언자의 대도를 걸어가세요.”

나는 감격하여, “여보, 고맙소. 우리 주님의 뜻을 위하여 또 다시 십자가를 지기로 합시다." 하고 손을 마주잡고 기도 하였다고 한다. 필자가 목양할 때 고영근 목사를 여러 차례 만나 뵈면서 존경하게 된 것은, 메시지가 하나님 말씀중심으로, 좌우익 사상에서 치우치지 않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투사이며, 물질에 깨끗하였고, 매월 장모님을 찾아뵙는 효자이며, 한완수 부인과 자녀들에게 인정받는 점이다.

여덟 차례에 걸쳐 고 목사님의 변론을 맡았던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회고를 통해 “불의에 대해 조금도 굴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신앙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그는 시국기도회와 부흥집회에서 독재정권을 지탄하고 복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다 투옥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른 참 성직자”라고 평가했다.

고영근 목사는 세례요한처럼 목숨을 내놓고 외쳤던 시대적 예언자로 그분의 삶과 메시지는한국교회와 민족에게 희망이었다.

김헌곤 목사  2yr@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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