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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지나친 죄책감을 경계해야 (1)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적인 문제는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비정규직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원만히 해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밀려나 생계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을 받고 있다. 가정의 생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7.1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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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근간인 죄와 심리적 죄책감을 구별해야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적인 문제는 삶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비정규직법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원만히 해결되지 않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밀려나 생계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협을 받고 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할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일 할 능력이 있는 데 일할 수 없는 현실이 사회 문제이면서, 이는 개인의 우울증을 야기 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음에 안타깝다.

건강한 죄책감과 반드시 개선하거나

치료되어야만 하는 병리적인 죄책감은 달라


이런 암울한 사회적 상황에서 우울증의 유발은 더욱 증가될 것이기에 이를 막아야할 필요성이 더욱 제기되는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울증의 근본적인 점을 죄책감과 관련하여 연구하여 예방하고 치료하고자 한다.

>> 지나친 죄책감은 우울증의 원인

우울증은 지나친 죄의식 또는 죄책감을 경계해야 한다. 우울증을 한 마디로 맥이 빠지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죄책감이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죄책감은 우울증 환자의 행동적 잘못과는 매우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이다. 이는 행동의 잘못과도 상관이 있지만 대개는 부정성이 많아지면 죄책감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부정성이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을 가지므로 편안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도 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지나친 죄책감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신앙의 근간이 되는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지나친 죄책감이 우울증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지나친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우리는 신앙의 근간인 죄와 심리적 죄책감을 비교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지나친 죄책감을 분명하게규정하기 위해서는 신앙에서 필요로 하는 건강한 죄책감과 반드시 개선하거나 치료되어야만 하는 병리적인 죄책감도 함께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이를 고찰할 때 용어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죄, 죄의식, 그리고 죄책감을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런 우울증과 관련하여 우리는 상담학적으로 다음의 몇 가지에 중점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지나친 죄책감은 우울증을 유발시킨다. 지나친 죄책감이 우울증을 유발시킨다는 점은 신앙에 대립되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죄책감 자체가 아니라 그 정도를 문제로 삼는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우리 기독교는 죄의 중요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를 해결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 구원은 우리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인됨을 고백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의 교리이다. 실로 우리의 구원이란 죄의회개와 관련하여 죄인임을 고백하는 회심이 일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죄의 문제는 신앙에서와는 달리 정신의학에서는 매우 다르게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신의학에서 죄를 인식하는 문제는 자칫하면 정신의 장애를 유발하는 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놀드(M.B. Arnold)는 죄의식이 심한 정도에 이르면 개인의 정신 건강을 오히려 해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죄의식은 수치감, 존중감 상실에 대한 두려움, 징벌에 대한 공포, 폭로에 대한 공포 등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심지어 죄의식은 개인의 회한(remorse)과 참회의식(repentance)을 산출해내는 양심적 기능도 역설하고 있다. 개인은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회한을 통해서 죄의식을 없애버리려고 하거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소멸되기를 바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상담치료에서 우울증 환자는 유달리 죄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실제로 우울증 환자는“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잘못임이 밝혀진 일에도 자신의 잘못이다”고 여기고 있다. 이때 치료자는 전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진땀을 흘린다. 이런 점에서 천주교에서 가르치는“내 탓이요, 내 탓이요 모든 것이 내 탓이로소이다!”를 뒤로 접어두어야 함을 역설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신이 건강한 사람, 아니 조금은 강팍한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서 훌륭한 것이지만 정작, 우울증이 든 사람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할 능력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는 모습은 스스로를 죽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제 환자는 일단 건강을 회복하기 위하여 잠시 그 심한 죄책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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