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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4>젖과 꿀 흐르는 가나안농군학교 세운 김용기 장로(1909~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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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5 15:35
  • 호수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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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곤 목사,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 관장, 본지 객원 논설위원

한국 근대화의 상징, 새마을운동 원조

 김용기 장로는 남양주시 조안면 봉안마을에서 한평생 농민운동을 한 선각자이다. 그가 항일운동을 하다가 양주경찰서에 끌려가 일주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 물 먹이기와 공중 매달기, 손톱 밑 찌르기, 손가락 사이 막대 끼워 비틀기 등을 당한 후 성경적인 농민운동으로 극일(克日)하며, 굶주리고 희망 잃은 국민들에게 신앙과 자신감을 불어넣는 운동(movement)을 선택하였다.

1962년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이후, 무려 60만 명이 넘는 사람을 훈련시켰다. 필자가 1973년 딸기 철에 CCC 형제들과 소설가 임옥인 권사님과 김용기 장로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때도 장로님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청년들의 마음을 도전하며 뜨겁게 만들었다.

김용기 장로

장로님의 정신(mind)은 1960∼70년대 ‘조국 근대화’라는 박정희정부의 정책과 맞아 떨어져 ‘가나안농군학교’라는 고유명사는 ‘새마을운동’과 함께 근대화의 상징적 언어가 됐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군학교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점심시간 박 대통령은 별 생각 없이 빵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댔다. 그 순간 김 장로는 박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요청했다. “각하는 3000만 백성의 어버이시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어버이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먹기 전에 식사기도부터 드려야 합니다.”

1962년 박정희 의장은 가나안농군학교를 방문하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즉시 빵 조각을 내려놓고 김 장로의 기도 후 식사를 하였다. 김용기 장로는 ‘우리 겨레는 이때 이렇게 살자’ 하는 생활헌장을 만드셨다.

①음식 한 끼에 반드시 4시간씩 일 하고 먹자 

②버는 재주 없거든 쓰는 재주도 없도록 하자 

③억지로 못 살지 말고 억지로 잘 살도록 하자 

④물질과 권력과 지식과 기술을 바로 쓸 줄 아는 국민이 되자 

⑤물질의 빚이나 마음의 빚을 지지 말자 

⑥우리 국민의 뛰어남을 말과 마음과 일과 행동으로 드러내자 

⑦외모만을 아름답게 단장하지 말고 마음을 더 아름답게 단장하자 

⑧시대적인 외세의 유행을 따르지 말고 우리 국민의 시대적인 감각을 바로 살리자 

⑨국토 통일보다 먼저 가정과 단체 통일을 빨리 하자 

⑩반공승공의 길보다 빈궁을 먼저 막아야 한다 

⑪하라고 하는 국민이 되지 말고 먼저 하는 국민이 되자 

⑫육체의 잠이 깊이 들면 물질의 도적을 맞게 되고 민족사상의 잠이 깊이 들면 영토와 주권을 도적맞게 되고 심령의 잠이 깊이 들면 영혼이 멸망케 되니 늘 깨어 살자 

⑬창조주 하나님을 외국 사람에게 빼앗기지 말고 우리 온 국민의 아버지로 삼자. 

김용기 장로는 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1975년부터 매일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하루 두 번, 네 시간씩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다. 구국 기도실 좌우 기둥에는 “조국이여 안심하라, 온 겨레여 안심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기도실에서 매일 4시간씩 기도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현재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양평에서 이어지고 있고, 세계 여러 국가의 인재 들이 와서 영.혼.육(靈魂肉)을 훈련받는 세계사에 자랑스러운 기관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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