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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칼럼: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와 변화를 통한 복지경영(17)
  • 김성철 교수
  • 승인 2018.09.13 01:28
  • 호수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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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높이는 기술개혁이다. 그러나 증기기관이 도입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산업혁명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은 늘 르네상스와 짝을 이룬다. 인문주의가 신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성직자의 독점권은 파괴되었다. 15세기,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혁신하면서 성경은 성직자의 손이 아닌 인쇄기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두 달을 꼬빡 필사해야 성경 한 부가 완성되었지만, 인쇄술은 같은 기간에 4,000부를 찍어낼 수 있었다. 자연스레 성경 이외의 책들도 인쇄되기 시작했다.
 
출판 기술의 발전은 왕정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민주주의 이론을 확산시켰고, 그에 따라 신의 뜻이 아닌 과학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이론서들이 양산되었다. 산업혁명은 이러한 배경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방향을 잡은 변화의 물길은 거세게 흘렀다. 인쇄술은 산업혁명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산업혁명 역시 인쇄술을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구텐베르크의 수동 인쇄기는 시간당 240장을 찍어냈다.
 
그런데 인쇄기와 증기기관이 결합한 1818년의 쾨니히 인쇄기는 10배의 물량을 소화할 수 있었다. 1843년에는 원통 회전방식의 윤전기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본격적인 신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차 산업혁명기의 핵심적인 미디어는 책과 신문이었다.  2차 산업혁명으로 전기가 도입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다. 1867년에는 타자기가, 1876년에는 전화가, 1877년에는 축음기가, 1879년에는 전구가, 1895년에는 무선통신기와 영화가 등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발명광의 시대’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에디슨이나 벨을 비롯한 천재들이 기상천외한 제품을 계속 발명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사람의 생각을 담고 전달하는 미디어도 많았다. 책이나 편지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와 대비해서 이 시기의 미디어 발명품을 ‘뉴 미디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는 뉴 미디어의 뜻이 SNS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지만 말이다.라디오와 전화, 전보에는 전에 없던 특성이 있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라디오는 미래를 알려주는 등불이었다. 그 방향이 거짓이었던 적도 있고 참이었던 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미디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영향력을 즉각적으로 행사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서로 다른 산업을 융합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환경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매스 미디어의 전통적인 시간 배열도 파괴되고 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극장 개봉과 방송 공개를 동시에 진행했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가 처음 방송될 당시 전통적인 영화가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칸영화제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전통적인 영화 범위에 포함시킬 수 없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편의에 따라 미디어가 재편되는 흐름은 피할 수 없다.4차 산업혁명은 결국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에 대해 무수한 예측을 해왔는데, 대부분의 전망은 문화의 시대 또는 서비스의 시대로 집중되었다. 나쁜 소리는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숲은 나쁜 소리를 집어삼키는 자연의 흡음재다. 그런데 도시화, 공업화, 현대화로 녹지 비율이 줄어들면서 소음을 흡음할 수 있는 역할도 줄어들었고, 우리 귀는 옛날보다 수백 배나 강한 소음에 노출되고 말았다. 세계보건기구는 1억 2천만 명이 소음으로 건강 문제를 앓고 있다고 했다. 디지털 음원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우리 주위의 거의 모든 시스템이 디지털 포맷으로 바뀌어 처리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듣는 소리는 아날로그 형태의 신호다. 사람들은 새로운 소리에 전율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험은 서울에서,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런던에서, 파리에서, 모스크바에서, 베이징에서, 취리히에서, 바르샤바에서, 프라하에서, 도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감동이 우리를 4차 산업혁명의 앞자리로 이끌 것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는 이미 우리를 감싸듯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행복’이라는 절대 가치 추구를 최종의 목표로 한다.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와 산업혁명의 변화를 통한 복지경영을 기대해본다
 
 
 
 

김성철 교수  webmaster@n49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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