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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XI)성경은 진리란 다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에 있다고 가르친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9.12 11:51
  • 호수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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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교수(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설립원장,본지논설위원)

III. 예수는 죄인(세리와 창녀)은 사랑했으나 죄(수탈, 불법, 음란)는 미워하셨다.

퀴어 신학자들은 예수는 오늘날 동성애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셨을 것이라고 다음같이 피력한다: “예수는 그들을 제삼자의 관점에서 대상화하거나 타자로 보지 않고, 그들의 심정과 처지에서 그들의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보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예수께서 오늘 살아 계시다면 예전에 세리와 창녀를 사랑하고 존중했듯이 동성애자들을 존중하고 사랑하셨을 것이다.”
 
정통 기독교의 입장에 의하면 예수는 세리나 창녀를 저들의 입장에서 긍휼과 인자를 가지시고 대했으나 저들이 죄된 행위를 인정하지는 아니하셨다. 예수는 이들이 죄된 행위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저들을 선도하셨다. 예수는 이들 소외당하고 정죄 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이들 아흔 아홉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큰 기쁨이 된다고 하셨다(눅 15:7). 죄인(세리나 창녀 등)이 죄(수탈과 음란)를 회개하고 그 죄된 행위를 끊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신 것이다. 예수는 동성애자들이 괴기한 행실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예수는 동성애자들의 인격과 영혼을 사랑하시고 저들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신다. 그러나 예수는 세리나 창기들이 죄된 관습에서 돌이키기를 요구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동성애자들이 저들의 괴기한 행실에서 돌이키고 정상적인(이성애적) 삶을 살기를 요구하신다.
 
IV. 성소수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의로운 행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1. 동성애 행위가 윤리적 잘못이 아니라는 퀴어 신학자의 견해는 성다수자의 정상적 윤리에 어긋난다.
퀴어 신학자들은 예수가 성소수자 동성애자들 편에 서서 저들을 이해해주었을 것으로 왜곡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과 심정으로, 소외당하는 이들 자신의 심정과 눈으로 소외당하는 이들을 보고 사랑하고 가까이 했다...게다가 오늘의 성소수자들은 사회적, 도덕적으로 적극적인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주류사회와 다수의 편견과 차별로 고통을 겪고 있다... 다른 사람이 그들의 삶과 권리를 재단하는 것은 동료시민에 대한 폭력이고 행패이다.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시민에 대한 민주시대의 예의이고 상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세리와 창녀의 친구가 되셨듯이, 오늘 우리는 성소수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1) 퀴어 신학자들은 이 문장에서 동성애자들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잘못이 아니라고 보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이 주류사회의 편견과 차별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왜곡하고 있다.

여기서 퀴어 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소수자(창녀, 세리, 반체제 인사, 동성애자, 다문화인 등)가 되는 것이 바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을 왜곡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는 다수자에 의하여 권익을 빼앗길 수는 있으나 그것의 시정(是正)은 법의 공정한 집행으로 막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가 된 것 자체가 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편파적인 윤리관이 되어 버린다. 퀴어 신학자들의 친(親)성소수자 견해는 동성애 행위는 성다수자의 정상적 성관습에 어긋나며 사회적 풍기를 문란케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성다수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 자기를 드러낼 때까지는 이들에 대하여 아무런 공개적 반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2. 퀴어신학자들은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헌혈로 인해 죄 없이 죽은 아기와 젊은이들, 그리고 노부부의 인권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동성애자들과 이들 지지자들 및 퀴어 신학자들은 남성 간의 항문 성관계를 인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실상 이들 중 그 누구도 동성애자들의 에이즈 헌혈로 인해 죄 없이 죽은 아기와 젊은이들, 그리고 노부부의 인권과 억울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억울한 일이 헌혈로 일어나는 일은 한국질병관리본부에서 에이즈(AIDS) 익명검사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 익명검사는 에이즈 의심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하는 것이고, 에이즈 감염(感染) 사실에 대해서는 검사받은 본인 이외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즈 익명검사 결과는 보건소도 누가 검사를 받았는지 알 수가 없고 에이즈 감염자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던 국가가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무책임적인 제도적 허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질병관리본부의 이러한 방침이 정의로운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에이즈 익명 검사가 에이즈 헌혈로 인해 비동성애자들을 에이즈 감염에 노출시키는 제도적 불의에 대하여 침묵하는 것이 정의인가?

3. 성경은 진리란 다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에 있다고 가르친다.

역사적 정통 기독교에 의하면 진리는 다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소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함에 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인격이며 그의 가르침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는 대제사장 기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기도하신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진정한 기독교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다수가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동성애를 가증한 일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심정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성소수자들 자신의 심정과 처지에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성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예수는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진리를 아는 길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동성애자들이 예수의 계명에 거하면 예수의 제자가 되고 진리(동성애는 하나님 앞에 가증한 행위)를 알게 되고 진리가 저들을 동성애에서 자유케 하리라고 가르치신다.  <다음 호에 계속>

각주)-----------------
1)박경미, “한국교회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여성신학자, 여성 기독교인들의 입장,” 2012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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