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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선교순례(14)청도의 이서국에서 출토된 유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8.03 08:17
  • 호수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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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현 박사

BC 139년 중 국의 장건이 물류거래차 왕래 하며 실크로드가 형성되어 육로로 이용되면서 지금의 청도와 경주 그리고 김해까지 상거래가 연결되었다.

바다길 실크로드는 낙동강 물을 중심으로 김해와 청도, 경주까지 연결되어 물류가 거래됨으로써 이 지역에 인구가 집결하게 되었고, 청도에는 동양의 예루살렘을 뜻하는 이서국, 경주에는 이스라엘의 샤론평야를 뜻하는 사로국, 김해에는 김수로가 가야국을 건국하게 된다.

경상북도 청도는 깨끗한 길이라는 뜻으로 선사시대에 낙동강과 청도 천을 잇는 물결이 너무나 맑아서 “맑은 물길”이라는 뜻에서 청도라는 지명을 붙여 이 물길을 따라 소금과 쌀 등을 운반했다고 한다. 실크로드는 역사는 이탈리아 로마에 서 한국의 경주까지 육로가 있고, 바다를 통해 이스라엘, 터키, 인도를 거처 한국의 김해까지 바다 길이 있어 물류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경상북도 청도를 중심으로 건국된 이 서국은 김해 가야국에서 이스라엘사람 도마가 석조기술과 철을 이용한 농기구를 제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신을 보내어 초청하고 석조기술을 습득하여 성을 쌓고 철기제조기술을 도입하여 곳곳에 제련소를 건설하게 된다.

사도도마는 인도에서 군다포러스 왕궁을 지은 경험이 있어 돌 다루는 솜씨가 특출했으며 또한 목공기술이 뛰어나서 민들의 집짓기 기술도 전수받아 이서국의 생활이 향상되고 있음이 이웃나라에 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경주의 사러국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중심으로 이 소식을 듣고 유대인 도마 가 이서국에서 이단복음을 전한다는 여론을 형성하여 젊은 병사를 화영아란 군대로 육성하여 이서국을 침략하여 함락 하고, 사러국을 신라로 국호를 변경하고 군대명은 화영에서 화랑으로 변경하여 운영키로 했다.

최근 경북 문화재연구원이 청도군 성곡리 지역에서 서민무덤 320곳을 출토 하여 유물 3,600여점을 발굴해 분석한 결과 서기4~5세기경 선민들이 사용했던 토기그릇으로 대개는 성찬기. 세례기, 애찬기 등 터키 등 초대교회에서 사용하던 기독교의 유물이었다.

이들은 모두 집단적인 기독교인들이 며, 사도 도마에 의해 기독교복음을 교육 받은 신자로써 영혼구원의 진리를 믿고 죽어 평소에 애용하던 신앙용품을 무덤에 시신과 함께 매장했던 것이다. 또한 청도의 이서국 에서는 석빙고와 약초 비빔밥을 애용하여 무병장수를 기대하며 살았던 근원이 발견되어 우리나라에서 고대석빙고 6개중하나가 청도에 있고 보물323호로 지정되어있다.

석빙고는 중국의 서경에 기원전부터 인간이 사용했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토굴에 어름저장고로 사용하면서 여름철까지 부패하지 않게 음식물 등을 보관하는 지금의 냉장과 냉동고 역할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로써 당시 청도사람들은 토기문화를 발전시키면서 땅과 함께 천국을 소망하며 정직하고 순박한 선민으로 살았던 흔적을 알 수가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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