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0.17 수 12:42
상단여백
HOME 사회·문화 NGO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다”NCCK, 사법개혁 긴급간담회 개최
  • 양진우ㆍ최세희 기자
  • 승인 2018.08.02 13:33
  • 호수 415
  • 댓글 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이하 교회협) 언론위원회(위원장 이동춘 목사)는 지난 7월 25일, 기독교회관 에이레네홀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한민국 사법부는 죽었다’”라는 주제로 사법개혁 긴급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한홍구 교수(성공회대학교)가 ‘사법부를 유린한 대법원장’이라는 주제로, 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가 ‘사법부개혁’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이들은 “사법부의 개혁은 촛불혁명으로 시작된 국가개혁의 정점”이라며 “이번 간담회를 통해 사법부의 독립이 사법부와 사법부 종사자인 법관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 민주주의의 완성을 이루기를 기대해본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는 “2018년 7월 NCCK 언론위원회 ‘(주목하는) 시선’”으로 사법농단의 주역인 대법원장 양승태를 선정했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지난 2017년 3월,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부당한 외압과 인사조치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에서부터 비롯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지난 5월말 상고법원 설치 문제를 놓고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했다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가 계속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이날 간담회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문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양승태의 개인 컴퓨터는 ‘디가우징’이라는 기법으로 소위 “완전히 갈아버렸다”고 하지만, 백업해둔 자료가 있을 수 있고, 관련 대법관이나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컴퓨터를 압수수색 해보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터질 일이 더 충격적일 수 있다. 양승태는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에 대한 재판을 갖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따라서 동 위원회는 양승태의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하여 진보언론과 수구언론의 논조가 확연히 구분된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중 조선일보의 경우는 처음에는 상고법원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으나, 이후 2015년 2월 6일 전 변협회장 이진강의 <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 기명 칼럼이 실리는 등 상고법원 설치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그런데 2017년 3월 양승태의 법관 사찰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조선일보는 사법농단이라는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면서 소장법관들의 문제제기를 2017년 9월의 양승태 임기만료와 관련된 법원 내의 보수-혁신갈등으로 몰고 가면서 양승태를 옹호했다. 
반면 여타의 언론 보도들에서 아쉬운 점은 양승태의 사법농단 사태를 다룸에 있어서 역사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KBS 최강시사나 TBS 뉴스공장 등 일부 라디오 시사프로에서는 양승태 사태의 역사적 뿌리를 캐는 프로가 나왔으나, 진보적인 신문에서는 이같은 기획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현행 헌법으로 개헌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통령 직선제였고, 그 다음으로 사법부의 개혁이었을 것이다. 사법부 개혁에서는 2가지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하나는 위헌법률심사를 전담할 헌법재판소를 설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추된 사법부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대통령에게 쏠려 있던 권한을 분산하여 대법원장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 덕분에 민주화 이후 대법원장의 권한은 유신시대나 5공시절에 비해 상당히 강화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흘려 가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성과물로 마련된 대법원장의 강화된 권한을 양승태 같이 독재에 부역했던 자들이 사법엘리트로 승승장구하여 휘두르게 된 것이다. 이점을 파고드는 보도가 눈에띄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 위원회는 주목해 본 것이다. 
한편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가 양승태를 반헌법행위자열전 수록 집중검토대상자로 선정했다. 그 이유는 양승태가 1975년 4건의 재일동포 간첩사건에서 배석판사로, 1986년 제주지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2건의 조작간첩사건에서 재판장으로 모두 유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편찬위는 긴급조치 사건을 포함할 경우 대상자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인혁당 사건 등 주요 공안사건이나 조작간첩사건의 판결만 조사대상으로 삼고 긴급조치 사건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양승태의 경우는 12건으로 단연 최고였다고 한다. 양승태가 판결한 4건의 재일동포 간첩사건은 모두 김기춘이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조작한 사건이고, 양승태는 법원에서 이를 처리한 것이 된다. 40년 뒤 대법원장과 왕실장이 되어 상고법원 설치를 둘러싼 거래의 두 주역은 경남고-서울법대의 8년 선후배 간이라는 건 말고도 이런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역사적 시각을 갖고 양승태 사법부가 감행한 긴급조치 위헌 무효화 판결이나 조작간첩사건 등과 관련된 국가의 손해배상 판결을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시효를 변경하여 무효화 한 것은 아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이같은 과거사 뒤집기 판결은 단순히 박정희 딸인 박근혜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양승태 자신이 초임과 중견 법관 시절 독재정권에 판결로 야합한 범죄적인 행위를 가리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제자들은 “양승태의 사법농단 사태는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자초한 민주주의의 위기였다”며 “양승태처럼 조작간첩사건 6건에 긴급조치사건 12건이나 한 법관이라면 사법부의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감옥에 갔어야 했을 것이고, 최소한 사법부에서 퇴출되었어야 마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부에서 과거청산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양승태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건이나 공안사건에서 독재권력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자들은 그 대가로 승진가도를 달리거나 요직을 두루 거치게 되었고, 민주화가 되자 사법부의 엘리트로서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결론 부분에서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언론도 개혁에 일조하려면 역사적 시각, 거기까지는 안 돼도 여상규가 누구인지 잊어버리지 않는 최소한의 기억력을 갖고 악랄할 정도로 집요하게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물고 늘어져야 한다. 한국의 언론이 이런 집요함을 갖지 못한 이유는 사법농단사태의 피해자들과 깊게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논평자는 감히 생각한다. 이들이 어떻게 고문당했는지, 빨갱이로 몰려 어떤 삶을 살아내야 했는지, 과거사 배상 판결이 뒤집히면서 받았던 돈을 토해내느라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사법농단으로 KTX 여승무원 재판이 뒤짚히며 불행히도 자살한 승무원의 딸은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이런 문제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면은 무수히 늘어났고, 기자는 무수히 많아졌는데 이런 기사는 오히려 보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이번 긴급간담회를 통해 사법개혁을 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국민에게 피해가 온다는 것을 깨닫는 자리가 됐다. 즉 돈과 권력이 없을 경우 사법당국에 의해 피해를 입게된다는 것. 따라서 이번 기회에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양진우ㆍ최세희 기자  jwy@cherald.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진우ㆍ최세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