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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연구/박현식 목사 논문(12)6.25 한국전쟁과 한국성결교회의 수난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7.11 17:15
  • 호수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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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식 목사 (목감교회) 본지 감사


1943년 5월 24일 일제 탄압에 의거 전국교직자와 신자다수가 검거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한국성결교회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므로 일제관헌에 의한 탄압이 시작되어 수난을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1943년 12월 29일 일본정부는 전국 성결교회를 강제로 패쇠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1950년 6월25일 공산군의 남침으로 북한군은 북한에서 사용한 방법으로 기독교연맹의조직을 활용하여 교역자신상을 면밀히 파악하여 그들의 조직에  활용하려하자 남한의 교역자들이 반대하여 수많은 수난을 격은 것이다.
이후 한국성결교회는 북한의 기독교연맹이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경성신학교를 점령하였고, 1950년 8월 23일 학교구내에 남아있던 교장 이건 목사를 비롯한 총회장, 사감, 다수의 목사들을 체포하고 납치하였으며, 전국교회를 강타하여 집단 살상을 감행하면서 병촌, 임자진리, 두암 교회 등에서 137명을 사살하여 순교하였다.
제10회 한국성결교회의 총회가 1955년 4월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신학교에서 개회되었으며 총회 개회사에서“유물주의 사조와 현대주의 자유 신앙적 사상을 배격하자”라고 선언했는데, 오늘날에 교회에 스며들어 내분을 일으키는 원인을 그때 그 정신과 개회선언문이 각 교회에 그리고 교역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시기에 남한의 교회들은 그 신학적 성향과 아무 상관없는 오직 극단적인 반공에 집착하여 그 정체성이 과거 이승만 정권포용과 북진무력 통일론을 추구하는 보편적 평화 그리고 반공이 곧 한국교회의 생존이라는 사고에서 머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결교회가 6,25전쟁과 북한 공산주의 침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잊을 수 없는 원통함이 남아 있지만 이로 인한 신앙적 가치와 현재 기독교의 번창 그리고 민주국가발전을 이룩한 현실에서 더 큰 미래로 눈을 크게 뜨고 북한선교에 매진할 시기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1961년 교단이 분열된 성결교회는 지도자들이 책임을 통감하고 양측이 대화를 시작하였고, 웨슬리이념으로 합심하여 피차 부흥하는 교단으로 맥을 같이하면서 미래를 위해 통일한국은 성결교단이 앞장서서 기독교복음으로 이룩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제 다함께 힘을 합해서 똘똘 뭉쳐서 북한선교에 매진 할 때라고 외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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