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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연구/박현식 목사 논문(10)한국선교 역사에 대한 교회의 올바른 인식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6.27 14:58
  • 호수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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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1월 9일 한국성결교회는 재흥 준비 위원회를 발족하고 경성신학교 강당에서 제1회 기독교 조선성결교회 재흥총회를 개최하게 된다.
총회의 전국 교구편성에 따라 북한에도 서부교구(평안남북도, 황해도), 북부교구(함경남북도)로 획정하고 순회전도사로 이성봉 목사를 파송하여 지역을 순회하며 교회재건을 주도하여 북한과 만주 경기도일대와 강원도의 교회들이 속속 재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재건된 북한교회들이 공산당의 탄압으로 인하여 많은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남하하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자유가 보장된 남한에서는 교회들이 재흥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었다.

박현식 목사 (목감교회)


1947년 10월 7일 경성신학교 대강당에서 제2회 총회를 개최했으나 북한에서는 북부교구에서 조한옥 대의원 한 사람만 참석하자 미국선교사 엘 길보른은 한국의 기독교에 위기가 왔다며, 그의 기고문에서 일제의 학정과 북쪽의 공산주의가 한국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국성결교회는 가장 진격적인 영적 부흥을 하면서 성공적인 자립으로 가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치하했다.
“오늘 한국에는 위기가 있다. 이중에 가장 큰 문제는 공산주의가 몰고 온 비극 안에서 마귀가 휘둘러대는 북한의 상황이다. 이 위기 때문에 기도가 요청된다.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 된 교회와 개개인에게 임할 하나님의 성령세례이다.”라고 했다.
1945년 8월 중순경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세계최초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일본은 전의를 상실하였고, 소련은 일본과 싸우겠다는 명분으로 북한에 들어오게 되었고, 일본은 마침내 동년 8월 15일 연합군에게 항복하게 된다.
1950년 4월경 경성신학교 강당에서 제5회 총회를 개최하고 평안남도 성결교회 상황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당시 10개 교회와 신자1,500명이 있고, 미처 남하 하지 못한 신자들은 지하교회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로 1년 뒤인 1951년 5월에 부산 수정동교회에서 제6회 총회를 개최 할 때 대의원73명중 북한의 서부교구와 북부교구에서도 참석하였고, 보고서에 서부교구 신자는4,290명, 북부교구 신자는 690명이 있다고 했으며, 개회선언문에서“국토는 초토화되고 민중은 도탄에 빠졌으며, 교회는 심히 큰 시련에 봉착하였도다.”라고 기록 하므로 6. 25 전란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와 예배당의 파괴를 짐작케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의 발전과 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하겠고, 시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북한의 교회복원과 신앙회복에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로 통일의 꿈을 이루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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