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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선교지순례/조국현 박사 연구(10)성서의 법궤와 금호강의 유물전시회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6.27 14:25
  • 호수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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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박물관장 조국현 박사

국립대구박물관의 유물전시실에는“금호강유역 출토유물”이 청동기249점 등 다량 전시해있어 역사적으로 기독교문화와 유물의 내용이 확실한 연대를 증명해주고 있다.
가락국전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갈릴리, 이집트의 카이로, 이탈리아의 로마, 터키전역, 인도의 첸나이 등지에서 서기40년대 이후 생산된 생활도구와 그릇을 비교해 볼 때 동질의 것이며 타 종교문화권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내용물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서기372년에 불교가 고구려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불교문화에서 사람이 죽으면 불에 태우거나 사리로 보관하는 전예가 있어 무덤에 유품을 묻지 않았고, 유교 또한 사 후 처리에 있어 무덤에 유물을 매장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무덤에 사자의 유물을 함께 묻어주는 제사장 제도의 관습을 한국에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김해에 있는 김수로 왕릉과 허 황후의 릉 그리고 대구의 소도, 청도와 금호강유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가락국에서 사용하던 청동투겁방울, 청동방울, 간 두령(장대 겁 방울)은 제사드릴 때 쓰던 용품이며, 철기제품 또한 포탄 등 청동기류가 대부분이며 큰 나무에 방울과 북을 메달아 놓고 신을 섬기며 제사 드리는 도구로 많이 사용한 흔적이 있다.
또한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한 종 모양의 청동방울은 성서의 법궤를 메고 강을 건널 때 사용했던 것이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국 읍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로 천군직분을 주어 천신에게 제사하고 신을 섬기는 직책으로써 별 읍으로 지정된 소도에서 거주하며 큰 나무를 세우고 나무에 청동방울과 북을 메달아 놓고 하늘의 천신을 섬기는 제사장 직책을 맡았다.
BC 6세기 경 유대인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었다가 포로시대가 끝나고 레위지파 일부는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일부는 에디오피아의 악숨에 모여 법궤를 복제하여 만들었고, 향신료를 구하려고 깅을 따라 배타고 바다실크로드를 통해 동쪽 땅 끝에 있는 한국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로인해 레위지파 제사장일부는 삼한시대 도피성(소도)를 대구에 건설하고 천군이 된 것이다.
소도의 입구를 해안이라 하고 고의성이 없는 죄인은 피해자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 해안에서 북을 치면 제사장이 재판하여 무죄 처분으로 소도에 입성하게 했다.
삼국사기에 압도국의 군장은 왕으로써 AD102년, 압도국의 천군은 소도의 제사장으로 AD142년에 멸망하게 되었고, 그중 일부 천군들이 일본으로 도망하여 일본에서지금도 법궤를 메고 강을 건너는 행사를 지역축제로 해오고 있다.[다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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