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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III)김영한 교수 특집 기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8.06.06 23:21
  • 호수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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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신학은 동성애를 “가증한 일”로 정죄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김영한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위원)

 

머리말

기독교 신앙을 가졌는 데도 정통신학자들과 퀴어 신학자들의 동성애 관점이 왜 다른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에 대한 대답이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같다 하지만 하나님 신앙과 세계관의 기본이 되는 성경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성경을 단지 문화적 산물로 보면서 문화적 해석에 띠라서 동성애를 시대적 문화적 방식으로 보면서 성경은 이를 거부하고 있지 않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정통 신학자들은 성경을 단지 문화적 산물 이상으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으로 진지하게 받으므로 “동성애는 가증하다”는 성경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동성애 이슈는 단지 개인이나 교단의 신앙적 취향의 문제를 너머서서 그리스도 교회가 그 거룩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이 시대의 성(性) 해방의 물결에 휘말려 정체성을 상실하느냐 하는 교회의 순결성과 신자의 거룩성을 지키는 문제와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라고 본다.

 

1. 성경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초월해 모든 종족과 문화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인간 삶과 윤리의 기준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성경은 역사적으로 오류가 있는 책으로 보고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뒤섞여 있는 책으로 본다. 다음 문장은 성경에 대한 퀴어신학자의 견해이다: “성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불완전한 생각과 지식을 통해 알려지고 표현되고 기록되었다. 시대와 지역의 종교 문화적 제약과 한계 속에서 성서의 저자들은 성서를 썼다. 따라서 성서에는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과 오류가 뒤섞여 있다. 우리는 성서에서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와 시대의 제약 속에 있는 인간의 편견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편견을 구별하지 못하면 자유롭고 책임적인 신앙인이 될 수 없다.”

  퀴어 신학은 위의 문장에서 보는 것처럼 “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문화적 편견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동성애에 대한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은 그 시대와 지역의 종교문화적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구절들은 2-3천년 전 그 시대와 지역의 종교문화적 편견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정통신학자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성경관은 자유주의적 성경관으로서 성경을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종교문화적 편견을 벗어난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는 역사적 정통적 기독교의 성경관과는 다르다.

  정통 개혁신학의 견해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요 동시에 인간의 말씀이며, 비록 문화적 옷(고대 히브리어와 중동 아시아의 문화)을 입고 있으나 그 말씀이 담고 있는 윤리적 규범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 구체적인 예로 모세 시대에 주어진 십계명은 오늘날에도 타당하다. 다른 신 경배 금기, 우상 숭배 금기, 하나님 이름 훼손 금기, 안식일 지킴, 부모 공경, 살인 금기, 간음 금기, 도둑질 금기, 거짓증거 금기, 탐욕 금기 등은 오늘날 그대로 타당한 것이다. 구약시대의 의식법(정결례) 등은 문화적인 것으로 오늘날에는 그대로 문자 그대로 적용되지 않으나 그 영적 의미는 오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그림자로서 지시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타당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정통 개혁교회는 성경에 인간의 시대적 편견과 오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비록 2-3천 년 전 성경의 저자들, 모세나 선지자들이 율법서와 예언서를 썼다 할지라고 비록 그 시대의 언어를 사용했으나 성경의 교훈은 시대적 문화의 제약과 한계를 넘어서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준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십계명을 오늘도 청교도 순례자의 전통을 이어가는 미국의 남부 주에서는 그대로 지키고자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후예인 역사적 개혁교회는 2-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십계명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예배시간에 읽고 지키기를 다짐하고 있다.

  로마서 9장 17절의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라는 구절이나 갈라디아서 3장 8절 “성경이 미리 알고 아브라함에게..” 등을 보면 성경이 의인화(擬人化)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자 그분의 권위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만이 최고, 최선, 최종의 권위를 지닌다.

 

2.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동성애 이야기 해석

 

  퀴어 신학은 “동성애 비난과 정죄란 2-3천 년 전 고대사회의 종교문화적 편견과 오류에 입각하고 있다”고 다음같이 주장한다: “성서에는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은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성서구절들을 내세워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은 2~3 천 년 전 고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편견과 오류를 21세기 인간과 사회에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유롭고 성숙하고 책임적인 기독교 신앙인이 되려면 동성애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성서의 구절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성서구절에 매이고 집착하는 것은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퀴어 신학의 해석은 성경 본문에서 벗어나는 젠더 이데올로기적 해석이다. 퀴어 신학자들은 소돔 사람들의 행동은 동성애가 아니라 불친절의 죄라고 다음같이 왜곡한다: “소돔 이야기에 대한 현대 해석자들은 소돔 사람들의 동성애적인 동기가 있다고 잘못 해석하였다. 롯의 손님들이 소돔 사람들이 느꼈을 법한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돔 사람들은 성적인 요구를 만족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손님들을 향한 우월성과 힘이 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를 가졌다. 그렇기에 롯의 딸들은 이러한 욕구의 대체자가 될 수 없었다. 이야기의 초점은 손님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지, 동성애를 행하려는 것이 아니었다.”(M. Nissines, Homoeroticism in the Biblical World: A Historical Perspective, tr. by K. Stjerna,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8, 49)

  그러나 정통 개혁교회는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동성애 기사(記事)는 동성애 사건을 보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는 구절은 소돔 사람의 동성애 행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이끌어 내라...상관하리라”는 말은 친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롯이 그들에게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창 19:7).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창 19:8b)고 간청하는데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롯은 이들의 악행을 막기 위하여 자기의 딸들을 내어주겠다(창 19:8a)고 타협하고자 한다. 8절에 롯의 두 딸이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Yadah)는 구약에서 948회 사용되었는데, 창세기에서 사용된 12회 가운데 10회가 성교를 뜻하는 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본문에서는 성교(性交, sexual intercourse)를 뜻하는 용어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롯은 소돔 고모라 불량배들의 동성애적 폭력을 완화하기 위하여 이성애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본문은 소돔 고모라 불량배들이 동성끼리 성적으로 결합하는 동성애를 너머서서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방적인 성폭행을 행함으로써 피해자를 죽음에까지 이르게하는 행위를 보여준다.(R. A. J. Gagnon, The Bible and Homosexual Practice: Texts and Hermeneutics (Nashville: Abingdon Press, 2001), 73) 본문은 불량배의 이러한 동성애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런 범죄인 것을 고발해주고 있다.

  퀴어 신학자들은 에스겔이 16장 49-50절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한 가지 죄악 때문에 멸망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구조를 보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죄” 다음에 접속사 “그리고”가 나온 다음에 또 한 가지 죄인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열거하고 있다. 레위기18장22절에 의하면 동성 간 성교는 가증하다(תועבה, 토예바)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단지 가난한 자를 돕지 않은 죄 때문만은 아니라 동성애라는 가증한 죄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 유다서 7절은 소돔과 고모라가 “다른 색”(σαρκὸς έτέρας, other flesh)을 따라 가다가 멸망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다른 색(色)”(other flesh)이란 동성애를 말한다.

  사사기에 기록된 불량배들의 동성애 기사: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사 19:22)는 동성애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스런 범죄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동성애는 천부적인 남녀 간의 이성애 성(性) 질서를 전복시키기 때문에 정상인(이성애자)인 성 다수자들에 의하여 비난을 받는다. 이러한 비난은 '도적질'에 대한 윤리적 평가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창조 질서로서 주어진 성적 질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타당하다. 남녀 간의 이성애가 바른 가정을 이루고 사회를 존속시키는 올바른 성 질서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서 현세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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