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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 (2)김영한 교수 특별기고

 

김영한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본지 논설위원)

 

3. 퀴어 신학의 사상적 배경과 인간관: 후기 현대적 생성철학과 인간 성(sex)의 유동성

1) 후기 현대적 생성철학 : 만물의 유전(流轉), 만물 본질의 불변성 부정

퀴어 신학자는 인간의 성(性)을 유동적인 것을 본다. 성이란 남성이나 여성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남성으로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유동성으로 본다. 성의 유동성 개념은 “만물은 끊임없이 생성 소멸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가, 헤라클리토스(Heraklitos)의 생성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헤라클리토스는 만물의 변화에는 그것을 생성하는 자연의 법칙인 로고스(Logos)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후기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로고스 사상을 부인하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만물 유전의 유동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후기 현대의 해체주의 세계관과 인간관이 자리잡고 있다. 여성 퀴어 신학자 루디는 후기현대주의 인간을 “이곳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저곳에 서 있기를 바라는 존재,” 곧, “어떤 고정된 성적, 성별, 인종, 종교, 국적에 매이지 않는 존재”로 본다.

이러한 생성철학에 기초한 윤리관에는 고정된 보편적인 규범체계로서의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와 해체주의적 세계관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와 해체주의 세계관은 범신론적 세계관으로서 우주와 역사를 창조하시고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초월적 절대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세계관이다. 퀴어 신학자 로버트 고스(Robert Goss)는 명상을 통한 하나님과의 범신론적 연합을 성관계에서 성취되는 오르가즘(orgasm)과 동일시하고 있다: “명상의 의식에 들어서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친밀한 접촉, 맛봄, 냄새, 유희 안에서 경험된다.” “오르가즘의 행복은 친밀하고 장엄하며 개념으로는 표현불가능한 그리스도에 대한 명상의 많은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명상을 통하여 함께 사랑에 참여할 때 성적이면서 영적 잠재성은 평범한 오르가즘의 문턱을 넘어서서 두 사랑의 파트너들을 새로운 실재의 차원으로 옮겨 놓는다.”

여기서 퀴어 신학은 성경이 말하는 영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신앙적 연합을 신체적인 차원에서 성적으로 느끼는 오르가즘의 희열로 왜곡시키고 있다. 정통신학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범신론적 연합이 아니라 신앙적 인격적 연합을 한다. 범신론적 연합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지만 신앙적 인격적 연합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의 죄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고 성령 안에서 거룩한 임재의 체험을 갖는다.

  2) 인간 성(sex)의 유동성 주장: 창조 질서에 위배

퀴어 신학은 인간에 대하여 규범성에서 벗어난 위치 자유성(positionality)을 강조한다. 퀴어 신학에서 규범적인 것이란 타율적 규범(heteronomative)으로서 기존 문화의 이성적 규범적 틀에 매이는 것을 말한다. 퀴어 신학은 타율적 규범을 부정한다. 인간은 자율적 존재로서 스스로 자기 존재를 결정한다. 여기서 인간의 위치 자유성이 나온다. 인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성(性)적 정체성을 위한 사회적 공간을 자유롭게 마련한다. 퀴어 신학은 인간의 정체성을 본질없는 정체성(identity without an essence)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본질이란 하나님의 본질이 알려지지 않는 것처럼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낯설고 이상한 것”을 말한다고 본다. 그러나 퀴어 신학이 인간의 정체성을 본질 없는 정체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정통신학과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형상인 창조물이라는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퀴어 신학의 인간 정체성 규정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 정체성을 그리는 성경적 모습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성경과 정통신학이 알려주는 인간의 본질은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하나님 앞에 섬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존엄한 존재이다. 성경은 인간을 무규정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이나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한 죄인이라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4. 퀴어 신학은 정통신학과 전혀 다른 기괴한 신학이다.

  퀴어 신학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본질이 알려지지 않다는 것도 하나님의 본질은 그의 보이는 형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졌다는 성경적 가르침과는 전혀 다르다. 퀴어 신학은 스스로 “신학”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범신론적 신관과 인간관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퀴어 신학은 인본적이고 범신론적 신관과 인간론을 가르치는 “낯설고 이상한” 신학으로서 정통신학이 가르치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삼위일체 신관과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관과는 처음부터 다른 신학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창조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등 무수한 이름으로 자신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신 열조의 하나님이시며 사랑과 인자와 긍훌과 공의와 정의가 충만하신 분이라고 가르쳐 준다. 이러한 퀴어 신학은 성경적 신앙에 기초한 정통신학은 함께 할 수 없는 괴기(怪奇)한 신학이다. (다음호에 계속)

김광연  angel@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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