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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분노를 용서함으로 해소하라 (1) 그렇다면 우울증은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이 관건이 될 것이다. 분노를 해소하면 우울증을 해결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분노의 정체와 그것이 왜 일어나며 그리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6.2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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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부정적 감정

부정성이 분노를 야기 시키는 근본 원인

   우울증은 분노를 수반한다. 아니 모든 심리 및 정신장애는 분노를 갖고 있다. 겉으로는 보기에는 맥 빠진 모습의 우울증이 분노를 갖고 있다면 의아할 것이다. 아마도 우울증은 겉보기와는달리 내면으로는 가장 강한 분노를 가진 질병일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을 우리는“홧병”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울증은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이 관건이 될 것이다. 분노를 해소하면 우울증을 해결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분노의 정체와 그것이 왜 일어나며 그리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분노란 무엇인가?

   분노(憤怒)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특성의 부정적 감정이다. 분노는 감정이기 때문에 막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분노는 때로 엄청난 에너지이기에 자주화를 내는 사람이 종종 지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분노는 그 강도에 따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바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특성이 드러나는 이유다. 분노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라는 말은 공격하여 파괴하려 하고, 파괴하기 위해서 공격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분노는 공격하기위한 특성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울 준비를 하게 되고, 때로는 죽음도 불사하려고도 한다. 그래서 분노가 강해지면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적을 무찌르려고 한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목숨을 지키려는 개체보존의 욕구가 사라진 매우 위험한 상태인데도 말이다. 이런 파괴적 특성을 프로이트는 죽음본능이라 불렀다. 프로이트에게 생명본능은 에로스(Eros)로서 건설적인 특성인 반면에, 죽음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는 파괴적인 특성을 갖는다. 에로스는 그 원천이 사랑이기에 건설적으로 하려는 반면에, 죽음본능은 그 원천이 미움이기에 파괴하려 드는 것으로 말하는 것일게다.

   그 뿐 아니라 분노는 그 대상을 찾는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반드시 찾는 특성이 있다. 그러기에 분노를 터뜨릴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화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분노는 왜 스스로 표출하려고 드는가? 그것은분노가 행동으로 표출될 때는 오히려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쾌감이란 정당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화를 풀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것이다. 이는 분노가 상대방에 대하여 공격하고 파괴하려는 특성을 가진 이유로 보아야 한다. 만약에 무슨 일로 화가 난 사람이 화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마치 자신이 설곳을 잃은 처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풀지 못하는 분노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고통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소모시키고 건강을 해치던가, 아니면 삶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심리학에서는 분노란 터뜨릴 대상이 있으면 분노로 인한 고통은 불안의 고통보다 더 가벼워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이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까만색일 것이다. 밝게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색인 분노는 누구나달가워하지 않는다. 분노를 발할 때 기분이 좋은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노는 대개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는 분노가 에너지를 가지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런 긍정적인에너지를 가리켜 일종의 옳은 것에 대하여 화내는 것으로서 의분(義憤)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께서도 수난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을 입성하셨을 때 하나님의 성전을“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하는 집”으로 만드는 이른바“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분을 내셨던 것이다(막11: 15-17). 이런 주님의 화를 바로 의분이라고 한다(막11:). 그래도 한 가지,예수님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의분이라도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옳거나 정당한 분노는 우리에게 때로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분출할 때 적절한 방법이 동원되지 못하면 자칫 의분을 내다가 분노가 갖는 그 부정적 특성에 휘말려 오히려 자멸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왜 생기는가?

   분노는 왜 생기는가의 원인론적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그 원인을 정확하게 모르면 정확한 처방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분노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고만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노는 대개 상대방이 자기 요구의 실현을 부정하거나 저지하는 것에 대한 저항의 결과로서 표출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노가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자아의 안정이 무너지거나 위협을 받는다고 판단될 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런측면에서의 분노는 맹목적인 공격이나 파괴의 충동이 아니라 자신의 기대나 욕구도 무너진다는판단에서 시작된다. 그러기에 분노는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 한다해도 무시하는 당사자보다도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확신이 있고 자아가 손상되지 않을 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분노가 일어날 때의 현상을 설명하고 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임상의 경험에서 분노의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분노는 부정성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분노의 원천이 부정성이라는 점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예” 또는 “그렇다고 동의하지 않는 것”, 즉 “오케이”하지 않은 것인데 나중에는 부정성으로 변하는결과로 되는 것이다. 이를 우리가 신앙적 차원으로 설명한다면 설교시에“아멘!”하지 않은 것이 나중에는 이른바“노멘”이 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태도가 결국에는 부정성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분노를 야기시키는 원인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를 우울증과 관련시켜 생각하면 일반적인 관점과는 반드시 일치되지는 않는다. 이는 지나친 분노감이 우울증의 전형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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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소리야 2018-10-17 22:55:57

    감정이 제어가 안 되니까 우울증인데 그걸 용서로 해결하라니. 이 뭔 돌팔이 같은..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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