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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불안을 극복해야 (2)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수치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울증 환자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당당해질 것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6.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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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치심은 극단적으로 자살을 유발할 수 있고

   심리적 고통과 불쾌감 경험하게 만들어

   개인은 자신만의 가치를 위하여 체면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다. 최근에 관심이 높아지는 우리 사회의 자살의 문제와 관련시키면 훨씬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와 관련한 수치심이란 체면상실이나 불명예로서의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자살은 수치심이나 치욕, 명예훼손 또는 중상모략 등이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의 자살이기 때문이다.

   이자살은 때로 사실과는 다르게 매우 단순한 사건이 그런 자살을 시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극도의 수치심이나 자신이 심각하게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알리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적어도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자살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살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치심이나 불명예를 씻어준다고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이들의 자살을 두고 사람들은 자신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죽기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사자들의 심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그 들에게는“이런 치욕과 불명예를 당하고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는 것이다.60년대의 그리스 과학자 지시스가 납을 원료로 하는 도료를 사용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보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신문에서 그 제안을 비웃었기에 자살했다.

   후에는 그의 제안이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자살해버린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것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사실과는 다르게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자살로서 입증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체면상실이나 불명예로서의자살은 심각하게 코너에 몰린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시도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사실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반드시 사실이 아니어도 체면이 상실되거나 불명예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은 밀려오는 강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방법만이 자신이 효과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1978년에 영국의헨리 벳슨(Henry Bedson) 교수가 자살한 사건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세계보건 기구의 천연두를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천연두 박멸을 선언한지 3년 후에 천연두 증세가 다시 발발하였는데,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바로 이 병을 연구하는 연구소 내의 한 사람이었다.그 사람은 바로 헨리 벳슨이 지도하는 기술팀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깊은 비탄을 느낀 벳슨 교수는 치욕을 느껴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이처럼 치욕과 불명예는 때로 죽음으로 보상하려는 심리를 자극한다. 물론 이들에게는 실제로 그러는가의 사실성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지금 언론의 집중타를 맞고 있으며 뭇사람들이 그들을 문제 있는 사람들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는 경우인 것 이다.그런 점에서는 이들의 죽음은 때로 정적과 일부 반대파의 보도에 휘말려 과장된 이야기와 터무니없는 소문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어이없게도 하찮은 비밀이 수치심을 자극하여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갖게 만들고 있다. 이는 극심한 모함과 비난을 받는 수치심의 경우에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부끄러움 인정하고 드러내라 우울증 환자는 대개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이때 치료자는 그 느낌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때로 수치심은 자신이 일으킨 것, 즉 환자에 의해 유발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당신이 과거에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은 부끄러워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은 그렇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확실히 수치심은 심리적 고통과 불쾌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수치감의 반대적 생각을 채택한다면 그런 고통과 불쾌감이 사라질 수 있다.

   환자는 부끄럽게 여기는 실수를 할 때, 그 경험을 숨기지 말고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에 대한 반대적 실습을 할 수 있어야한다.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수치심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울증 환자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당당해질 것이다. 그것은 정직하고 진실한 측면으로 비난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은 진실하면 당당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된 것이다.자신의 실수나 결점을 인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개방성과 관련되어 있다. 임상에서는 자신을 개방하는 만큼 정신이 건강한것이고 폐쇄하는 만큼 건강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이 자신을 열어 보이는 개방성을 오래 실천한다면 수치심을 경험하는 비생산적인 경향은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이는 물론 자신의 수치심을 스스로 해소하는 치료방법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우울로 인한 수치심에서는 몇 가지의 경향성을 들어 해소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울이 부끄러움, 즉 수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때때로 우울해지기에 진정으로수치는 아닌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적 문제와 심리적 상태를 진정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치체계를 받아들이는 경우에, 그리고 부끄럽다고 느낄 때에만 수치심이 경험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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