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럽게도 친정아버지 임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옛말이긴 하지만 불효한 자식에게 임종을 하게 한다는 말도 전해져 오긴 하지요.

  마음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후부터 잠시 쉬러간 식구들 다시 돌아오고 임종예배를 드리는 두시간여동안 제 몸 안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있었는가 할 정도로 쉬지 않고 울었습니다. 의외로 장례를 치루는 동안에는 슬프면서도 담담할 수 있었습니다.아버지의 몸을 떠난 영혼이 가는 길을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누군들 당신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서 슬프지 않았겠습니까? 개인의 비극을 넘어 가정의 비극이요, 사회의 비극이기도 한 엄청난 일이었는데요. 이른 새벽시간에 당신은 사저가 보이는 바위 위에 서서 많은 생각을 했겠지요.

  어느 연구자는 해저물녘이 하루 중 가장 감성적인 시간이라고 했지만 새벽예배를 위해 깨어나는 이른 새벽 시간의 투명함을 몰라서 하는 소리일거예요. 삶이 가장 잘 보일 뿐 아니라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들판의 풀꽃처럼 보이는 때가 바로 그 시간이니까요.

  어릴 때부터 살아온 동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른 어느 때보다 더깊게 생각했겠지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 자리에 섰겠지만 그랬다 한들 깊은 망설임 없었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홀로인 그 시간에 다른 어느 사람보다 더 깊고 뜨거웠던 영욕의 시간들이파노라마처럼 펼쳐졌겠지요.

  아, 만약 그 때 당신이 다윗을 알았더라면, 다윗이 그 깊은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의지하고 또 의지하던 주님을 알았더라면! 당신은 당신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었을 텐데요.

광혜원 이월마을에서 칠현산 기슭에 이르기 전에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다만 눈발에 익숙한 먼 산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도 없게 자작나무숲의 벗은 몸들이

이 세상을 정직하게 한다 그렇구나 겨울 나무들만이 타락을 모른다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후략)

  고은의‘자작나무 숲으로’일부입니다. 영문도 모른 채 들어선 자작나무 분지가 펼쳐질 때 누군가 등을 떼밀었는지 뒤돌아보는 시인의 깊은 눈매 속에서 문득 당신이 설핏 보여서 말이지요. 창조주의 섭리를 모른다면, 그 섭리를 믿지 못한다면 삶은 어쩌면 영문 모를 일투성이 일지도 모릅니다. 영문 모른 채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고 들어가서 보니 자작나무 숲이 영문 모르는 곳일 수도 있겠지요.

  홀연 시인은 깨닫습니다. 자작나무도 자신처럼 나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자신을 깊게 바라보는 자작나무가 세상 무엇보다 정직하다는 것을, 거짓이 없는 정직이 사무친 슬픔이란 것을, 삶이 눈물이란 것을, 자성自醒의 시입니다. 당신의 죽음도 깊은 자성自醒탓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당신의 죽음에서 배워 할 것도 그 자성이구요.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떠나는 당신에게 사랑했다며 편히 가시라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세찬 손길로 옷깃을 붙잡는 꼴입니다.

  자성은 고사하고 살아생전 난도질했던 그 입술과 글로 오히려 당신을 찬양하니 방약무인입니다. 더욱 황망한 것은 니편 내편 가르노라 슬픔은 뒷전이고 눈물 속에는 표리부동함을 숨기고 있습니다.

  통곡 소리 가운데 증오의 날 세우고 득실을 저울질 하는 천칭을 감추노라난무하는 언사들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당신처럼 외롭게 서봐야 하는데, 전진만 아는 인생기차를 잠시 멈추어야하는데, 앞만 아니라 좌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데, 적어도 조화를 꾀하는 군자는 되지 못해도 영합하는 同而不和는 말아야 하는데, 뒤돌아서면 금방 잊을지라도 욕심을 버리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데, 죽음 뒤를 생각해야 하는데, 전도자의 고백을 빌려서라도 삶의 헛됨을 응시해야 하는데, 슬픔 앞에서 진정으로 슬퍼할 수도 없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잠16:3)

  고 노무현대통령님, 당신께 제가 좋아하는 말씀으로 인사를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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