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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는 자로서의 나사렛 예수(IV)IX. 예수 섬김 정신의 신학적 원천

김영한(본지논설위원,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1. 하나님의 케노시스:

  1) 예수의 자기 비움

  나사렛 예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정신은 그의 본성에서 나온다. 그의 본성은 그가 단순히

예언자였다는 사실을 너머서서 그가 “태초의 말씀”(the Word at the beginning)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태초의 말씀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ó μονογενής υίός, the only begotten Son, 요 1:18)이라는 사실을 증언한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예수가 태초의 생명의 말씀(ó λόγος th/|ς zωh/|ς the Word of Life, 요일 1:1)이었다는 것을 증언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찬가(der Christus Hymnus)를 인용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본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μορφῇ θεοu, morphē theou, the essential form of God)시나”(빌 2:6a). “하나님의 본체란 하나님의 형상(form)으로서 보이지 않는 성부의 보이는 모습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전 본성과 본질(the whole nature and essence of Deity)을 지니고 계신다. 예수는 하나님이 존재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동질적 존재를 나타낸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b). 이 구절은 예수의 신적 동질성과 겸허한 모습을 말하고 있다. 예수는 자기의 신적 지위를 포기하고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인간의 신체를 입으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έκένωσε, ekenose, emptied)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7). 이는 하나님의 자기 비움(the self-emptying of God)이다. 예수의 자기 비움이란 하나님의 게노시스(kenosis)로서 바로 우주와 역사의 지고의 중요한 사건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비우셔서 인간 역사 속에 들어 오신 것이다. 첫 사람의 반역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우주와 역사가 예수의 자기 비움의 사건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되는 구속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예수의 자기 비움의 겸허한 행위는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가능케 하였다.

 

2) 하나님의 낮아지심

  첫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으나 성자 예수는 자신을 비어(κενόω, kenoō, emptying)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시고 유한한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자신을 낮추었다. 하나님의 자기 비움이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제한하셨다는 것이다. 자기 제한이란 영적 존재인 로고스가 신체라는 형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낮추심이요 자기 제한이다. 자기 고양이 아니라 자기 비하(卑下)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빌 2:7-8a). 이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로고스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성자의 자기 제한(the self-limitation)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겸허요 자기 낮춤이다. 이러한 자기 비움과 낮춤을 신성의 포기로 오해해서는 않된다. 자기를 비운 하나님의 로고스는 여전히 하나님이었으나 제2위라는 신성의 지위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셨다. 다음 성경 구절은 예수가 여전히 신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거해 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3) 예수의 자기 포기

  여기서 게노시스 이론을 제창한 토마시우스(Thomasius)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의 자기 포기란 본질적 신성(전능, 편재, 전지 등)을 보유했으나 상대적 신성 (전능성, 편재성, 전지성)을 포기했다거나 메시아 의식을 포기했다고 해석해서는 않된다. 역사적 예수는 비록 인간의 죽을 몸과 인성으로서의 유한한 지성, 감정, 의지에 제한되셨으나 신성으로는 그 본질적인 면에서 있어서 조금도 이러한 제한에 구속받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 구절에서 나타난 예수적 예수의 말씀은 그가 신성의 본질적 차원을 그대로 보유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b).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 10:30).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포기하셨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b).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 죄의 대속물로서 자기 자신의 몸을 증여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주심이다. 하나님의 자기 주심은 하나님의 자기 포기요, 자기 버리심이요, 자기 부정이다. 하나님은 자기 주심을 통하여 그 분의 정의를 성취하신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결단코 그의 사랑 때문에 그의 정의를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은 예수의 사랑을 빙자하여 동성애를 허용하며 심지어 예수는 동성애를 금기(禁忌)하는 율법의 해방자라고 말한다. 이는 구약과 신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행위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심을 욕되게 하며, 우리의 죄 때문에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되도록 내어주신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은 결단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희생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섬김이란 정의와 사랑이 입맞추는 나라요 공동체다.

 

 

김광연  angel@c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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