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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순교자의 발자취를 따라서(8)순교자 이판일 장로(임자 진리교회. 1897 ~1950)
  • 김헌곤 목사
  • 승인 2017.04.14 07:41
  • 호수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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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인재 목사와아들들) 이판일은 1930년에 전도자 문준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 접하고, 1932년 7월 신학생 문 전도사와 진리교회를 설립한다. 일본제국주의 시절, 이판일 집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목포경찰서에 구속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평안하였고 싱글벙글 웃기까지 하였다. 경찰은 그가 미쳤다고 판단하고 석방하여 내보냈다. 그는 목포에 장남 이인재 의 집에 가 요양하면서 “나같이 비천하고 못난 인간을 위해 주님께서 모진 고문과 핍박을 당하셨는데, 내가 이렇게라도 주님 사랑을 만분지일이라도 갚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고 영광스러워서 싱글벙글 웃음이 나오더라. 내 속을 알 수 없는 형사는 내가 미쳤다고 여겼는지 혀를 끌끌 차더니 집으로 가라고 석방해 주더구나.”라고 밝혔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이 장로는, 교회를 지키겠다며 피난가지 않았다. 그는 “설사 내가 화를 당한다 할지라도 주를 위한 것이라면 뭘 주저하겠느냐?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순교를 각오하였다.” 고 단호하였다. 10월 4일 수요일 저녁 예배시간, 교회당은 이미 빼앗겼지만 이 장로 집에 48명의 교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빨갱이들이 날뛰는 상황 속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 한 일인가를 알지만 순교를 각오 한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왔다. “이 악질 반 동 새끼들!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여 버리겠어. 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번 기회를 주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결 심한 사람 있으면 손들고 나와 그러면 살려주지. 자, 시간 없다. 빨리 나와!”

그러나 한 사람도 손들고 나가는 사람 이 없었다. 손만 들 면 살 수 있었는데 도 죽음을 각오한 성도들은 그들이 이 끄는 대로 3km 앞 갯벌로 끌려갔다. 어린아이들을 포 함한 48명의 교인들 과 이판일·이판성 형제는 교대로 노모 를 업고 형장의 길을 끌려간 것이다. 미리 파놓은 그곳 모 래구덩이 앞에 이르자, 이판일 장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아버지여, 우리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리고 저 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스데반 집사의 기도를 드렸다. 빨갱이 하나가“곧 뒈질 놈이, 기도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기도냐!”사납게 내뱉으며 몽둥이로 뒤통수를 가격하였다. 이판일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교인들을 무 참히 죽창으로 찌르고, 몽둥이로 때려 갯벌 웅덩이에 잔혹하게 묻어버렸다.

이렇게 이판일 장로의 가족 13명과 성도 35명이 장렬하게 순교하게 된 것이 다. 목포에서 혼자 살아남은 이 장로의 아들 이인재는, 임자도 수복시 국군과 함께 들어와 가족을 죽인 빨갱이들을 붙잡았지만 용서하고 예수 믿게 하였 다. 이인재는 목회자로 헌신하여 임자 진리교회에서 은퇴하였고, 이 장로의 손자, 증손자가 전도자로 헌신하였다. 이판일장로의 순교자의 삶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발자취이다.

김헌곤 목사  webmaster@n49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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