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2.26 금 09:13
상단여백
HOME 논단 젊은지성
도토리에서 참나무가 되기 위해서는…필연 그리고 우연적 미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22 15:02
  • 호수 0
  • 댓글 0

 

필연 그리고 우연적 미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론을 살펴보면“잠재태와 현실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는 실체(The Substance)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설명들 중 하나이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면,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결실을 맺으면 참나무가 되는 과정을 통해 잠재태와 현실태를 설명한다. 도토리는 참나무가 되기 전에 잠재적인 참나무 상태에 있다. 아직은 잠재적인 상태에서만 참나무이지 실질적인 참나무는 아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은 도토리는 참나무가 된다. 이를 두고 참나무를 도토리의 현실태 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잠재적인 상태”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잠재(潛在)라는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속에 잠겨 있거나 숨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소위“잠재적인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아직은 아니지만, 잠재된 것들이 현실로 드러날 것을 기대하고 그런 말을 은연중에 사용한다.

 그런데 그 잠재력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는 중요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잠재력은‘필연적 잠재력’과‘우연적 잠재력’을 가진 양면성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도토리와 참나무의 비유에서 본 바와 같이 그 열매에 맞는 씨앗을 심고 가꾸면 반드시 그 열매의 나무로 성장한다. 배추흰나비의 번데기는‘반드시’배추 흰 나비가되어 하늘을 날게 된다. 이를 [필연적 잠재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철수라는 어린 아이가 어른 철수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철수가 성장하여 어떤 인물이 될 것이라는 여부는 알 수 없다. 의사를 꿈꾸는 어린 철수의 잠재적인 상태가 후에, 성인이 된 철수가 현실태에서 의사가 된다는 것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는 [우연적 잠재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전자와 같이 잠재적인 상태에 있는‘성질의 것’이 현실로‘반드시’이루어지는 과정이 있는가 하면, 이에 반해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잠재적인 모습에서 현실태로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무화과 나무의 비유 (막 13:28)가 나온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고....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우리는 잠재적인 모습에서 현실태에 이루어질 가능성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를 통해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그 모든 시간과 때를 알 수 없듯, 우리의 미래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현실 속에서 잠재된 능력을 발휘할 [거룩한 징조]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잠재된 모습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시면서‘그 때’의 징조를 보여주셨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잠재된 능력 속에서 현실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거룩한 징조]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흔히 우리는‘가능성(Possibility)’이라는 말을 설교에서나 연설에서 많이 언급한다. 가능성이라는 말은 어두움이 전혀 포함되지 않는 순수한‘미래지향적’인 말이다.

 오늘날 모두가 성공지향적인 목회와 신앙의 삶을 원한다. 그 성공의 척도를 평가하는 가치가 저마다 다르다고 할 것이지만, 어쨌던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 ‘성공’이란 일반적인 의미는 가능성을 실현하는 상태라고 봐도 무난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잠재적인 모습에서 추구하려고 하는 것을 현실태로 이어가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처럼, 현실태로 가는 과정에서 여름이 가까워지는 [거룩한 징조]를 발견해야 한다. 만약 잠재된 모습들이 현실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필연성’이 내포되지 않았다면, ‘반드시 되어짐’이 결여된 상태에서 단지 이상적인 현실태만을 지향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미래(未來)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면, ‘필연성’을 무기로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가능성이 희박한 가운데, 미래의 장밋빛 희망만을 고려한다면, 회색빛으로 물든 어두움도 있다는 사실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처럼,“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이”, 시대와 자신의 비전을 다시금 반성하고 회복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무엇보다 잠재된 우리의 모습 속에서‘거룩한 징조’를 바라볼 수 있어야‘필연성’을 담보로 하는 현실에 참예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