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대한 강자의 통 큰 베풂
이집트에서의 봉변을 가까스로 면한 아브람 일행은 많은 재화를 가진 부자의 모습으로 가나안 벧엘에 도착한다. 그곳은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의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람 공동체 내에 또 하나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조카 롯과의 목초지 점유 문제였다. 그들의 생업은 유목이므로 목초지와 수자원의 확보와 안정된 수급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기업형 유목 수준 정도로 가축의 수가 증가했으므로 목초지 수급 문제는 아브람 공동체에게 있어서 현안의 문제가 되었다. 재산이 적당했을 때는 친척끼리 평화로웠으나 이제는 물질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의 평화를 위협하게 되었다. 분쟁이 상존하는 공존 보다는 평화를 지향한 이별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했는지 모르지만 아브람은 조카 롯과의 이별을 선택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가 지배하는 족장사회였지만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양보한 훈훈한 모습은 신앙적 성숙에 입문한 자의 모습이고 강자의 아름다운 여유의 실현이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통 큰 베풂이 부족한 우리사회에서 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삼촌이 조카에게 우선권을 이양하는 결단으로 인해 목초지를 둘러싼 아브람 공동체의 잡음은 일순간에 소멸된다. 아브람은 강자로서 권한을 지녔지만 그 권한을 다 사용하지 않았다. 권한을 적게 사용하고 공동체를 잘 경영하는 자가 실력자이다. 강자는 약자에게 통 큰 베풂이 있어야 되고, 약자는 그 베풂에 감사할 줄 아는 미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롯이 선택한 그 땅은 가나안에서 농사와 목축에 적합한 금싸라기 노른자위 땅으로서 나중에 ‘소돔과 고모라’ 사건의 주 무대가 된다. 왜 이 ‘목초지 게이트’ 사건에서 나중에 발생할 ‘소돔과 고모라 게이트’ 사건을 암시하고 있을까! 이 부분은 독자들에게 묵상의 자료로 남겨둔다.
구인본 목사
신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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