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0.27 화 23:06
상단여백
HOME 교회 전도
명목상 교인을 위한 복음전도, 어떻게 할 것인가? (2)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6.05.03 21:48
  • 호수 0
  • 댓글 0

본지 지난 4월 11일자에서는 명목상 교인을 위한 복음전도가 왜 중요한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명목상의 교인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로잔위원회는 명목상의 교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고, 성경의 정의는 무엇인지 고찰해보자.

1. 로잔위원회의 정의
명목상의 교인을 위한 복음전도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명목상의 교인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의를 올바르게 내리게 될 때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로잔 위원회는 명목상의 교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개신교인들 중 명목상의 교인들을 위한 복음전도” (Christian Witness to Nominal Christians Among Protestants)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위원회 (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의 후원으로 1980년 7월 태국 파타야에서 역사적으로 개최된 세계 복음화 전략 회의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발표된 여러 보고서중 하나이다. 먼저 정의된 내용을 살펴보자.
명목상의 교인이란 개신교의 전통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개인적인 믿음을 근거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 신뢰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하며, 그 결과 사랑, 기쁨, 평안, 말씀을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교제, 신실하게 증거 하고자 하는 결단,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깊은 관심, 앞으로 올 천국에 대한 소망 등을 갖게 된다 (고전 10:1-12; 롬 2:28-29; 계 2:4-5, 3:1; 마 15:8-9; 히 10:25).
이 보고서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명목상의 교인에 대한 정의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연관하여 그리스도를 참으로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특별히 여기에서 신뢰 (commitment)라는 단어에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진정한 신뢰는 개인적인 믿음에 근거한다. 따라서 그러한 신뢰는 사랑, 기쁨, 평안,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과 같은 특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공부, 기도, 교제, 전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대한 열망들을 포함한다.
결국 명목상의 교인인지 아닌지를 구분 짓는 기준은 하나님과 살아 있는 개인적 관계라 할 수 있다. 그 보고서는 좀 더 자세하게 이 개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보충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명목상의 교인은 교회 회중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볼 때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1.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경건하게 예배하지만, 구주이며 주님이신 예수님과 아무런 생명적, 인격적 관계도 없는 사람.
2.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지만,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만 참석하는 사람.
3. 성탄절, 부활절 등 주요한 교회 절기나 결혼, 세례, 장례식 등 특별한 예식 때만 교회에 가는 사람.
4. 교회에 거의 나가지 않지만 안정감이나 감정적 혹은 가족적 유대, 전통 등의 이유로 교회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5. 어떤 특정한 교회와 관계를 갖지 않으며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개신교의 전통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2. 성경적 정의
성경의 관점은 중생(regeneration)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이다 (5절). 여기에서 ‘물’은 물로 더러운 것들 (누군가의 죄들)을 씻어내는 정결(淨潔)을 상징한다 (민 31:19-24; 막 1:4; 히 10:22). 그러므로 물로 난다는 것은 회개와 믿음을 의미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개에 대한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설명했는데, 신약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마음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그 안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1) 이전에 그가 살았던 죄 된 것들을 미워하는 것, 2) 두 번째 요소는 죄에 대한 애통 (grief or mourning)으로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세 번째 요소로 연결된다, 3) 참된 회개의 또 다른 요소는 진정한 굴욕 (gracious humiliation), 4) 마지막으로 죄를 버리는 것.
한 마디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서 신뢰하는 것이다. 존 웨슬리는 “신생의 표지들” (The Marks of New Birth)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구원 얻는 믿음’ (saving faith)에 대하여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언급했다: “참되고 살아있는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이며, 이는 동의 즉 깨달음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마음 안에서 역사하시는 기질(disposition)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그의 죄들이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호의로 화목케 되었다는 하나님 안에서의 확실한 신뢰와 확신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먼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구원 얻는 믿음은 자기 포기, 신뢰, 그리고 지적 동의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믿을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바로 중생 (重生)이다. 성령의 역사 없이 어떤 사람도 구원 받을 수 없다. 중생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배제한다 (요 1:12-13, 엡 2:8-9).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성취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명목상의 교인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은 자이다. 비록 어떤 사람이 기독교 신앙체계에 대해 잘 알고, 정규적으로 교회에 다니며, 심지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더라도 (또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인정되더라도), 소극적인 면에서 자신의 진정한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모습인지를 보지 못하고, 적극적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어떤 분인지를, 더 나아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는 명목상의 교인일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회심의 유무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회심의 과정을 통과할 때에만 비로소 거듭나는 것이다.
                   이운산 기자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