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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지 소개 - 네팔 방창인 선교사(2)선교초기 네팔정부의 종교활동 금지로 매우 어려운 선교환경 조성, 1962년 포카라의‘람 가트’(Ram Ghat)에 네팔 최초의 교회 세워져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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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초기 네팔정부의 종교활동 금지로 매우 어려운 선교환경 조성
1962년 포카라의‘람 가트’(Ram Ghat)에 네팔 최초의 교회 세워져

(1) 네팔의 복음 접촉

 네팔에 기독교가 최초로 전해지게 된 것은 1662년 이탈리아의 카푸친 사제들이 인도에서 티벳을 가기 위해 네팔을 통과하면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배타주의 정책으로 약 300년 가까이 네팔은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오다가 1950년 드디어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교의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 이 때 네팔을 떠났던 기독교인들의 후손들과 네팔 기독교인들이 다시 네팔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외국인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입국이 허락 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외국인과 선교사들의 정치적, 종교적 활동을 엄하게 금지하여 힌두왕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하였다. 선교사들은 네팔 정부가 원하는 사회개발 사업 등을 통하여 네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나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거나 개종 시킬 수 없었다. 선교사들은 네팔 왕의 개종에 관한 제약을 받아드리고 네팔 교회의 성장을 지지하는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네팔의 상황에서 선교사들의 사역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기독교인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즉 간접적인 사역을 통하여 네팔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사역은 의료 활동이나 교육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그 역할을 감당 하였다. 특히 카톨릭 선교사들은 1951년에‘고다와리’고등학교와 1955년에‘성 마리아’학교를 세웠으며, 1954년에 예수회 사제들에 의해‘성 자비에르’학교가 세워져 네팔의 신 명문 교육기관이 되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병원 건립과 의료활동에 주력하면서 향후 네팔의 선교 사역을 위해‘UMN’(United Mission to Nepal)을 카트만두에,‘ INF’ (International Nepal Fellowship)를 포카라에 세워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이 협력하여 네팔의 기독교 선교를 주도해 가게 된다. 이들은 네팔 정부와 계약을 맺어 여러 분야에서 사역하게 되는데, 그들이 맺은 대 정부 계약서에‘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정신으로’일한다고 하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그들은 이 정부와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어 각국에서 파송되어온 선교사들이 현지인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었으나 어떤 형태이든지 지도자의 역할은 수행할 수 없도록 되어있었다. 이는 네팔의 엄격한 법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려는 자구책의 하나이었으나 이러한 선교정책은 네팔 현지기독교인들의 비난의 요소가 된다. 1953년에 INF는 포카라에‘Shining Hospital’을 세웠고, UMN은 1954년에 조직되면서 카트만두와 탄센을 중심으로 병원을 세워 의료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외국인 선교사들의 간접적인 도움과 네팔 기독교인들의 열심이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2) 네팔 교회의 탄생

 네팔의 최초 교회는 인도에서 돌아온‘부디 사가’에 의해 포카라의‘람 가트’(Ram Ghat)에 세워졌고, 카트만두에는 1962년에‘뿌떨리써덕’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탄생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네팔 현지인에게도 전도와 개종이 엄격히 금지된 힌두사회에서 생존 해야만 했던 네팔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갇히고 추방되는 등 온갖 위험에 직면 해야만 하였다. 이는‘트리부반’왕의 뒤를 이은‘머헨드러 국왕’이 신헌법 제정하여 선거를 실시하고 네팔 의회정당(Nepal Congress Party)을 설립케 하였으나 만족스럽지 않게 여기므로서‘머헨드러’왕은 네팔의 통치에 무(無)정당 제도(Panchayat system)가 합당하다고 역설하며 정당들을 없애고 오직 왕이 직접 권한을 행사하도록 수상을 임명하자 기독교인들의 처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갔다. 그는‘한 정당, 한 종교’의 개념을 가지고 헌법을 만들어 기독교의 전파를 강력히 규제하였다. 문호 개방으로 네팔에 돌아온 기독교인들은 또다시 개종의 위협과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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