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3.6 토 11:56
상단여백
HOME 논단 젊은지성
망상이 아닌 비전으로 꿈 이뤄야환상이 비전으로 되는 순간은“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하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16 17:46
  • 호수 0
  • 댓글 0

꿈에 대해 영어사전을 찾아보았다. 꿈을 뜻하는 단어‘드림(Dream)’은 이중성 곧‘비전(Vision)’과‘환상(Illusion)’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전자가 말하는 꿈은 장래에 이루고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전력하여 추구하는 직업이나 가치관을 말한다. 이 꿈은 충분히 실현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가치가 있는 꿈이다. 예를 들면, 대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이 되는 것은 실현가능한 비전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꿈을 가꾸어 가는 것도 비전의 한 모습이다.

 하지만 가끔 꿈은 후자를 지칭할 수도 있다. 남들이 흔히 ’헛된 꿈(an empty dream)'이라고 말할 때, 이를 환상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결핍된 상태에서 이상(Idea)만을 추구하는 꿈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물 위를 걸어가신 예수님을 빙자해서,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거나 어제 밤 꿈을 꾸고 복권 당첨을 기대하는 것은 전자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비전, 곧‘가치 있는 꿈(a wonderful dream)’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릴 적 어른들이 아이들에게“너의 꿈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어린이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고, 과학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한다. 꿈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바로 출발이다. 양면성을 지닌 꿈의 출발은 동일선상에서 시작된다. 꿈이 시작되는 첫 과정은 비전과 환상, 모두를 내포한다. 어린 아이의 꿈을 두고, 비전과 환상을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그렇게 동일하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 꿈이 비전의 길을 걷는 것과 환상의 길을 걷는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환상이 아니라 비전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그 꿈을 가지고 조그마한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야 한다. 성경에“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야고보서 2:19)이라고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꿈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내가 목사가 되고자 한다면, 신학교를 들어가서 열심히 신앙생활과 신학 공부를 해야 한다. 벽돌 공장에서 하나씩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실천이 반드시 요구되어진다. 만약 이런 노력이 없이 꿈을 이루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비전과 환상을 이야기할 때, 또 다른 하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꿈의 양면성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다.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이 남들에게 비쳐질 때는 환상이 될 수 있고, 망상에 불과할 수 있다. 비록 남들에게는 망상으로 비출 수 있지만 나에게는 비전이라고 생각된다면, 이는 위의 설명과 또 다른 접근이 요구된다. 환상이 비전으로 되는 순간은“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연설문 중에서‘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에“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조지아에서 미시시피와 앨라배마에 이르기까지 옛날 노예의 아들들이 옛날 노예주인의 아들들과 함께 형제처럼 살게 되는 꿈입니다. 나는 지금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백인 어린이가 흑인 어린이와 형제와 자매처럼 손을 잡게 되는 꿈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꿈은 당시에는 환상이었지만, 실현가능한 비전이 되었다. 당시 백인의 노예였던 흑인들이 노예해방이라는 꿈을 가진 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환상이 때로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여 비전으로 바뀐 사례가 역사안에서 전개된다. 환상이 비전으로 바뀌는 과정은 하나님의 역사가 개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타나지만, 또한 아무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인내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마음 속에 남들에게는 환상으로 비춰지지만 나에게는 비전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한다.

 꿈 꾸는자 요셉의 경우가 그렇다. 그의 꿈은 형제들에게 시기와 질투가 되었고, 요셉의 꿈은 남들이 볼 때, 비전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했다. 요셉이 그의 꿈을 말했을 때, 실현가능한 비전이었다면 당시 형제들은 수긍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꿈이 형제들에게는 환상으로 보였고, 질투의 대상이었기에 그는 생명까지 버려야 했던 힘든 여정의 길에 올랐다. 물론 그 험난한 항해가 뜻하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의 한 줄기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셉의 경우는 환상에서 비전의 결실을 맺는 또 하나의 전기이다.

 끝으로“꿈꾸는 자는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여진다면 그 꿈은 분명 환상이 아니라 비전이다. 때로는 그 비전이 환상으로 비춰질 수 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비전은 혼자서 가꾸어 가야한다. 그리고 점점 환상이 비전으로 바뀌는 과정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이젠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 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환상이 아직 환상으로 머물러 있으면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 그 환상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남들에게 보이는 환상이 나에게는 비전이라면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자. 그러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푸른 잎이 낙엽으로 옷을 갈아입듯, 조금씩 환상에서 비전으로 옷을 갈아입는 것을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옷이 아직도 누추한 환상의 메이커에 머물러 있다면 그때는 내려놓고 다른 길을 향해 꿈을 찾아 떠나야 한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