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2.1.22 토 21:25
상단여백
HOME 교회 설교
예수부활은 민족의 소망부활절 메세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16 15:58
  • 호수 0
  • 댓글 0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은 부활의 전제 조건이며, 신앙의 핵심이고 구심점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인 동시에 실천이며 기독교 신앙고백의 핵인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실 때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오셨으며, 지상에서의 삶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 다시 오심도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순종하심이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고 밝히면서 이어서“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은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고 하였다.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바울이 이제는 획기적으로 변하여서 한평생 주님을 증거하면서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겪으며 끝내는 순교하기까지한 위대한 주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로마서 8장 18절에서“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외쳤다. 확실히 성경이 주는 교훈은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닥쳐서 나라마다 야단이다. 20개국의 정상들도 온통 어떻게 경제난국을 극복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북쪽의 로켓발사문제로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검은 돈이 정치권에 유입되었다고 야단이고 여야는 보궐선거를 앞에 놓고 온갖 추태들이다. IMF때보다도 더 어렵다는 불황이지만 5월 황금연휴 기간에 제주도, 해외 항공권은 이미 동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종교계도 심각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기독교계가 소위 메이저급 교단들마다 각종 송사로 갈등이 심각하다. 어느 한 교단도 편할 날이 없는 것 같다.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문제이다. 연합단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어떤 성직자는 큰 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는 책까지 발간하였다. 거기에다 기독교박멸운동단체까지 생겨나는가 하면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모 종교가 종교편향을 이야기하니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다.

 모두가 죽지 않아서 문제는 더욱 시끄럽다. 죽어야 산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지 저마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목회자의 약속은 보증수표가 아니라 부도내기가 다반사이고, 어떤 사람은 상수원 환경문제로 10평도 증축하기 힘든데, 모 종교집단은 상수도 지역에 800만평 부지에 어마어마한 건물이 들어서도 환경단체도 꿀 먹은 벙어리요, 정부는 도대체 법 집행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니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가 된지가 오래다. 도대체 법이 과연 정의의 편인지 묻고 싶다. 그러니 송사리는 걸리고 고래는 빠져 나간다고도 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주님의 고난이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다. 우리 모두 죽어야 하겠다. 첫째, 법조계가 죽어야 하고, 둘째는 언론계가 죽어야 하며, 셋째는 종교계도 더 죽어야 할 것이며, 넷째 정치계가 죽어야 하겠다. 죽어야 희망이 있다. 모두 희망은 말하면서 죽지 않으니 더욱 문제다. 진정으로 희망을 바란다면 모두가 죽어야 한다. 대통령도, 국회도, 법원과 검찰도, 대기업도, 대형교회도, 소형교회도, 종교단체들도, 노사도 모두 죽어야 희망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도 죽으셨기에 부활 승천이 있었고, 또 다시 오실 것이다. 민족부활의 계절에 예수부활은 민족의 소망임을 잊지 말자. 모두가 죽고 다시 태어나야겠다. 살고자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