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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지성 성결인북아일랜드의 정치 갈등과 합의 과정에서 종교의 역할 (18)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5.12.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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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부터 2006년까지의 경험을 중심으로-

북아일랜드여성연합(NIWC): 모니카
맥윌리암스와 펄 사가 
회담에 앞서 아담스는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 공화주의 대표가 영국 총리와 회담을 하는데 있다”, “이번 회담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가져다 줄 절호의 기회이며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는 과정의 출발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블레어는 “전투와 폭력이냐, 아니면 절망이냐 라는 옛 방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합의를 위해 비폭력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어떤 난관도 이겨낼 것이다”라 하였다. 1998년 신페인은 평화 협상에 참가하여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북아일랜드 자치(self-rule)와 IRA의 무장해제가 실행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약 10여 년간 IRA에 의한 폭력적인 행위들은 계속되었다.
  아담스는 정계에 입문한 이후 신페인의 부당수를 역임하였고, 1983년 벨파스트 서부지역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영국 의회 하원의원에 선출되어 1992년까지 의정활동을 하였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다시 영국 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는 북아일랜드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얼스터 지역에 영국인들이 거주하는데 항의하면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 충성 맹세를 거부하며 영국 의회의 의원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2011년에는 아일랜드공화국 의회에 진출하였다. 2012년 6월 26일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벨파스트에서 만남을 가졌다. 아담스가 이끄는 신페인은 1983년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2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자 민족주의자 정당의 첫 번째가 되었다. 신페인이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가톨릭 정치 정당이 되었으며, 북아일랜드 정부에 제2당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북아일랜드 분쟁 현장에서 IRA의 중심 인물로 아일랜드의 통일과 북아일랜드의 재통합을 목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신페인의 당수가 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담스는 아이리쉬 민족주의자 가문에서 태어나 가톨릭 신앙을 믿으며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정체성은 아이리쉬와 가톨릭으로 규정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이 민족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에 기인하여 정치적인 분쟁으로 나아갔다는 측면에서 아담스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톨릭계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신페인의 당수로서 그는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물론 북아일랜드에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평화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기에 현재의 신페인 당은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아일랜드의 분쟁의 시작부터 평화협정 그리고 평화정착에 이르기까지 그는 항상 가톨릭 신앙인과 아이리쉬로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분쟁 기간 동안에는 극단적인 폭력과 투쟁으로 차별과 불평등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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