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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자여~! 어이할꼬...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확신이 생기고 변화되는 것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09.04.1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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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황사현상이 심하다. 그런 황사현상이 우리 교계에도 불어오고 있다. 십자가는 늘어가고 있는데 이 사회는 여전히 암울하다. 어찌하다보니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행실이 믿지않는 사람들보다 더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일부 성직자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명예와 부(富)를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앞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더욱 열심이다.

 2008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섬김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자리에 서 계셨다. 그런 예수처럼 주위의 연약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성직자가 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섬김의 자세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하고 있다.

 성직자는 성직 수준에 맞는 도덕성과 생활수준을 유지해야하고 성도는 성도답게 사는 것이 교회와 크리스천의 상식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는 교회의 본질인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세상을 살아간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접했고 또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지를 잊고 살아간다. 환란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그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하고 고통스러움을 당했어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고통만하겠으며 제자들에게 배신당한 그 억울함과 아픔만 하겠는가.

 이는 모두가 확고한 믿음이 없고 단지 자기 필요한 대로의 거짓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사자굴 속의 사무엘도, 욥과 요셉도, 그리고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던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산 믿음의 조상들이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어떤 대상만 있으면 된다.

 믿을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사람은 확신이 생기고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눈을 뜨는 것이다. 믿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그만큼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욕심 때문에 의심을 하며 사는 것이 괴롭고 고달픈 것이다. 텅 빈 마음이 되어야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벗게 되면서 이해와 갈등의 어둠을 뚫고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베드로와 바울이 바로 그렇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할 지라도 죽음조차 이기신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이 절실한 때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해 주신 것이다.

 이제 사순절을 맞이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고 교회안에 우리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교회를 세우고 우리 모두가 절망 중에서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갖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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